의대 증원 방식·수치는 빠졌다… 尹정부, 속도조절 왜?

입력 2023-10-20 00:02
19일 시민들이 서울시내 한 의과대학 앞을 걸어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날 의료 인력 확충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의대 정원을 대폭 확대하겠다는 정부의 구상이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김지훈 기자

정부가 19일 발표한 ‘필수의료 핵심전략’에 의과대학 정원 확대 규모와 방식이 빠진 것을 두고 의사단체의 반발을 감안한 숨 고르기라는 분석이 나온다.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국민 여론이 우호적인 만큼 정부는 당장 ‘증원 수치’를 내놓는 대신 필수의료 위기 해소 방안 등을 제시하며 설득 작업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2025학년도 입시(내년 4월까지 확정)를 목표로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한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조 장관은 “의료계와의 협의를 (국민이) 걱정하는데, 국민 기대가 큰 만큼 의료계도 정부와의 협의에 적극 협력해줄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와의 협의 문은 열어두되 끌려다니진 않겠다는 뜻이다. 복지부는 의협과의 일대일 대화 채널인 ‘의료현안협의체’보다 대학교수와 노동·소비자 단체 등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하는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산하 ‘의사인력전문위원회’에서 논의를 주도하겠다는 계획이다.

발표를 미룬 배경에는 의협이 총파업을 거론하며 거세게 반발한 영향 외에도 산적한 의료 현안이 많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갈등 조정 없이 밀어붙이면 필수 의료 정상화나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 등 의협의 협조를 구해야 하는 다른 과제들마저 난항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2020년 때처럼 의협 내 대한전공의협의회가 단체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점도 정부로서는 부담이었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의협이 반발을 이어가 파업에 나설 가능성에 대해 묻자 “(의협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의사 정원 확대와 함께 논의한다고 하면 (양측이 문제점) 공유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일(파업)이 없도록 열심히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내년 3월 집행부 선거를 앞두고 의협 차기 회장 출마 선언이 본격화하는 시점이라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출마 예정자들이 현장 의사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경쟁적으로 정부와 대립하는 모양새를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증원 규모를 일방적으로 확정할 경우 강 대 강 대치로 타협의 여지가 사라질 것이라는 계산이 작용했다. 실제로 의대 정원 확대 논의가 불거지자 출마 의사를 직간접적으로 밝힌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과 박인숙 전 국회의원은 복지부를 향해 비난 수위를 높였다.

국민 여론이 의대 정원 확대에 우호적인 것도 속도조절에 나설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다. 정부가 의협과의 이후 협의 과정에서도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얘기다. 조 장관도 지난 17일 의사인력전문위원회 모두발언에서 “의협에도 당부의 말씀을 드린다. 과학적 통계에 기반한 수급 전망에 따른 의료인력 확충과 함께 추진할 정책 패키지 논의를 위해 보다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대안을 제시해주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이를 의식한 듯 이필수 의협 회장도 “장관이 이야기했던 그것(데이터에 기반한 자료)에 대해 준비 중”이라고 언급했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