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난 사람=이성규 경제부장
사법고시의 부작용을 해소하고자 2009년 전국 25개 대학에서 출범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은 어느덧 운영 15년차를 맞았다. 설립 취지는 법조 카르텔을 깨고 적재적소에 필요한 다양한 전문 법조인을 양성하자는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법대 줄서기’로 인한 고교 교육의 파행을 막고 이른바 사법고시 낭인을 없애겠다는 목표도 있었다.
15년이 흐른 현재 모든 법전원 설립 취지가 실종됐다는 게 왕상한 서강대 법전원장의 평가다. 왕 원장은 19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법전원이 법조 카르텔을 해소하겠다고 출범했지만 오히려 로스쿨 카르텔이 등장했고, 사법고시 낭인이 사라지자 변호사시험(변시) 낭인이 나타났고, 고등학생들의 법대 진학을 위한 사교육이 사라지자 대학생들의 로스쿨 준비를 위한 고액 학원들이 성황을 이루고 있다”며 “현재 법전원은 변시 준비반으로 전락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변시 합격생 수를 사실상 정해 놓고 뽑는 상대평가가 아니라, 말 그대로 ‘자격 시험’으로 시행해야 한다”며 “법전원에서 정규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큰 문제가 없으면 대부분 합격할 수 있도록 바꿔야 법전원 설립 취지에 부합한 법조인이 양성될 수 있다”고 말했다.
-법전원 제도 도입 취지 제대로 지켜지고 있나.
“로스쿨 제도는 15년 전 출범 당시 내세웠던 모든 명분을 잃었다. 법전원은 다양한 전공과 경력을 가진 학생들을 받아들여 각 분야에 전문화된 법조인을 양성한다는 게 도입 목표였다. 이에 대학들은 저마다의 특성화 교육을 내세우고 국내외 현장실습 교육 방안을 포함한 제안서를 제출해서 법전원 인가를 받았다. 하지만 현재 제안서에 적은 대로 특성화 교육을 제대로 시행하고 있는 법전원은 없다. 학생들이 법전원 3년 내내 오로지 변시를 위한 과목에만 매달리는 탓이다. 학생들은 변시 과목이 아니면 강의를 거의 듣지 않는다. 반면 변시 대비용 고액의 사설학원 강의를 듣지 않는 이들이 없다.”
-법전원 교육이 당초 설립 취지를 살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변시가 ‘자격 시험’으로서의 기능을 잃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변호사 시험을 매년 두 번씩 치른다. 합격률이 가장 낮은 뉴욕주, 캘리포니아주의 합격률도 60~70% 수준이다. 반면 우리는 1년에 단 한 번 사전에 사실상 정해진 합격자 수 안에 들어가기 위해 피말리게 경쟁한다. 예전 사법고시 낭인은 지금 변시 낭인이 됐다. 갈수록 떨어지는 합격률(올해 기준 53%) 속에 학생들은 변시 시험 준비에 ‘올인’할 수밖에 없다. 변시 합격이 절체절명의 과제가 된 학생들에게 변시 과목 준비가 아닌 전문 심화 교육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사법고시 제도 하의 기득권 카르텔은 깨진 것 아닌가.
“깨야 할 카르텔은 변호사 기득권이다. 법조 카르텔은 깨지지 않았다. 여기에 ‘전국 25개, 정원 2000명’이라는 제한과 함께 법전원 카르텔이 더해졌다. 법전원 입학 정원이 고정되자 법전원 입시 낭인들도 등장했다. 법전원 지원자들은 해마다 늘고 있다. 사법고시 낭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가 변시 낭인, 법전원 낭인 문제까지 초래한 것이다. 학부에 법학과가 있을 때 고등학교 교육이 왜곡됐던 것처럼, 법전원에 가려는 학생들로 인해 대학 교육도 적잖은 영향을 받고 있다. 25개 대학에 국한해서 인가받은 법전원들 또한 그 기득권이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법전원 서열화가 이뤄졌고 하위권 법전원에 진학한 학생들이 재수를 통해 상위권 법전원에 재입학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법전원 평가가 이뤄지지만 지금껏 인가 취소를 받은 곳은 한 곳도 없다. 새로 인가를 받은 학교도 물론 없다. 국회에서 사법고시 부활 등이 추진됐지만 모두 좌절됐다. 일반 국민들이 보기에 법조 카르텔은 난공불락 요새가 아닐 수 없다.”
-법전원 제도 폐해 막기 위한 해결책이 있나.
“변시 합격자 수 제한을 풀어야 한다. 변호사 자격을 말 그대로 자격증으로 인식하는 게 첫 단추다. 법전원은 대한변호사협회로부터 모든 교육 내용을 평가받는다. 평가를 위해 내라는 자료도 해마다 늘고 있고 법전원들은 정밀 감사를 받다시피 한다. 학생들은 변협이 만든 평가 항목에 맞춰 제대로 교육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은 법전원에서 교육을 수료한다. 이런 학생들에 대해 사전에 정해진 숫자만큼만 합격시키겠다는 변협 입장이 앞뒤가 맞나? 그들이 정한 평가 기준을 따르면 대법관 출신도 논문이 없으면 로스쿨에서 이론 과목을 강의할 수 없다. 변협이 변시 합격자 숫자를 제한하겠다면 법전원 교육에도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
-서강대 글로벌법무학과 개원을 앞두고 있다.
“내년 3월에 신설되는 서강대 글로벌법무학과는 현재 변호사 시험에 매몰된 법전원 교육 체제에 대한 ‘대안교육’이라 할 수 있다. 로스쿨의 원조 미국처럼 철저히 실무 중심의 교육을 진행할 것이다. 교수진은 100% 변호사 자격 소지자로 주요 로펌 변호사 등 실무 전문가들로 구성했다. 글로벌법무학과의 교육은 국제법, 미국법에 특화돼 있다. 미국 로스쿨과 협약을 체결해서 복수학위를 취득할 수 있도록 했다. 빠르면 2년 안에 서강대 석·박사 학위와 미국 로스쿨 법학석사(LLM) 학위를 동시에 취득할 수 있다. 국제기구로 진출하는 인재나 정부, 공공단체, 기업 등이 필요로 하는 국제법, 미국법 전문가들을 양성할 것이다. 이같은 시도가 현재의 법전원 제도에서 실현 불가능한 교육을 가능케 하는 국내 법학 교육의 이정표가 되길 바란다.”
정리=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