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잃은 아픔 시로 치유하는 제주 소년

입력 2023-10-19 04:02

아빠와 함께 제주도에 살고 있는 아홉 살 시우는 매일 시를 쓴다. 시우에게 시는 천국으로 간 엄마를 향한 사랑이자 그리움이다. 눈, 바다, 안개, 숲 등 주변의 모든 것들이 시우에겐 엄마의 손길이 되고 목소리가 된다. 밤이 되면 아빠와 기도하며 엄마에게 쓴 시를 읽는다. 떠난 엄마가 보고 싶어 울기도 하지만 시우는 아빠와 함께 일상을 이어나가며 시와 자연으로 마음을 다독인다.

시우의 아버지 민병훈 감독이 자신과 아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었다. ‘포도나무를 베어라’ ‘사랑이 이긴다’ ‘터치’ 등 작가주의 영화를 만들어 온 민 감독은 아내 안은미 작가를 폐암으로 잃고 난 후 시우와 함께 서로를 위로하고 치유하는 모습을 ‘약속’(사진)에 담았다. 다큐멘터리에는 시우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쓴 23편의 시와 민 감독이 아내를 그리워하며 촬영한 제주의 풍광이 들어있다.

17일 서울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민 감독은 “아이와 나의 마음 속 이야기를 담는 게 쉽지 않았지만 시우가 시를 가지고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하듯 난 주위의 자연과 특유의 이미지로 이야기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모든 사람들은 죽음, 헤어짐을 겪기에 이것은 우리의 이야기지만 보편적인 이야기이고 다른 이들에게도 위로를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민 감독이 다큐멘터리를 만들 결심을 한 건 시우가 처음 쓴 시 ‘슬픈 비’를 읽고 나서였다. 창 밖으로 내리는 비를 보며 엄마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나도 슬플 땐 얼굴에서 비가 내린다’고 표현한 시였다. 시우는 최근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시 쓰는 제주 소년’으로 출연해 많은 이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시우는 “엄마가 내 시를 들었을 때 좋아하실 거라고 생각하니 시를 쓰는 게 좋다. 엄마에 대한 기억을 더 자세하게 만들고 엄마를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며 “내가 쓴 시 중 가장 좋아하는 세 작품을 꼽으라면 ‘슬픈 비’와 ‘약속’, ‘영원과 하루’”라고 말했다. 다큐멘터리의 제목이기도 한 ‘약속’은 엄마가 임종 직전 시우에게 ‘언젠가 꼭 천국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것을 생각하며 쓴 시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