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준비청년들이 홀로서기 이후 숨는 이유가 보통 실패했기 때문이거든요. 대학이나 회사를 그만둘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면목이 없다며 연락을 끊는 경우가 많아요. 누구든 실패할 수 있어요. 도와줄 사람이 많으니 숨지 말고 전문기관의 도움을 받으면 좋겠습니다.”
충남 아산에 위치한 충남자립지원전담기관의 함유나 과장은 18일 자립준비청년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언제든 자신들을 찾아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전문가들에게 언제든 고민을 털어놓길 바란다고도 했다.
충남자립지원전담기관 관계자들은 자립준비청년 특성에 맞는 충분한 훈련과 프로그램이 정착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양한 체험과 준비과정, 정보습득을 통해 자립 역량을 키워야 비로소 제대로 된 홀로서기가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은 자립준비청년이 각종 정보를 몰라서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가장 안타까웠다고 입을 모았다. 양육시설에서 자란 청년들은 함께 생활한 친구들에게서 정보를 얻지만 대부분 새롭게 바뀐 정책 등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일부는 자신이 자립지원 대상인지조차 모르는 사례도 있었다.
김진형 대리는 “처음에는 ‘왜 저한테 전화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청년들이 있다. 자립지원 대상이라고 설명해주니 그제야 적극적으로 바뀌었다”며 “조금만 도와줘도 청년 스스로 정책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청년 개인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자라온 환경을 면밀히 들여다봐야 한다. 일례로 위탁가정에서 자란 청년들은 보육시설에서 성장한 청년들에 비해 주거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위탁가정은 위탁부모 전문교육을 받은 가정, 조부모·친인척 가정 등이 선정된다. 세간의 인식과 달리 자립준비청년의 절반 정도는 보육시설이 아닌 위탁가정에서 자란다.
장수진 주임은 “조부모나 친인척이 위탁가정으로 선정되는 경우가 있는데 거기서 자란 아이들은 자신이 자립준비청년인 걸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보육시설과 그룹홈, 위탁가정 등 각기 다른 성장환경에 맞는 지원체계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정보를 습득한 청년들은 정책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자립을 시도하지만 일부는 자립이 어려운 특수한 환경에 처해 있는 경우도 있다. 자립준비청년이 ‘영케어러‘(가족돌봄 청년)일 경우가 그렇다. 위탁부모가 90대 친할아버지인 자립준비청년 A씨는 할아버지의 간병과 생계를 동시에 챙겨야 하는 가장이다.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지만 거주지가 농촌인 탓에 취직할 곳마저 마땅치 않았다. 일자리를 구하러 나가고 싶어도 고령에 병환이 있는 할아버지를 두고 갈 수 없어 결국 그 지역을 떠나지 못했다.
부모나 본인에게 장애가 있어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지적장애가 있는 B씨의 경우 아버지마저 경계선지능장애가 있어 할머니가 위탁부모로 지정된 사례다. B씨에게 필요한 각종 지원책을 고령의 할머니가 챙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돈과 얽힌 안타까운 일도 많다. 자립준비청년의 보호가 종료되면 나오는 정착지원금을 노리고 일부 위탁부모는 관공서에 보호종료를 신청하기도 한다. 정착지원금으로 위탁부모들의 빚을 갚는 사례, 자립지원금을 노린 사기행각에 당하는 사례는 흔한 일이 됐다.
김 대리는 “충남은 농어촌 지역이 많아 위탁부모들의 나이도 많다. 자립준비청년들이 가장처럼 생계를 책임지기도 한다”며 “잘 모르다 보니 사기는 너무 쉽게 당한다. 특수한 상황에 처한 자립준비청년들을 조금 더 세밀하게 챙길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A씨와 B씨처럼 집중관리가 절실한 자립준비청년은 충남지역의 자립준비청년 669명 가운데 100명가량이다. 충남자립지원전담기관의 전담인력 8명은 669명에 대한 전반적인 모니터링과 함께 집중관리 대상 100명을 한 달에 한 차례 이상 만나 마음속 이야기를 듣고 있다. 생계·교육비 지원은 물론 극단적 선택을 시도할 정도로 정신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청년들을 전문기관과 연결하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청년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충분히 보상받는 느낌을 받는다고 이들은 말했다. 자립에 성공한 청년들이 후배들의 홀로서기를 지원하는 ‘바람개비 서포터즈’는 그래서 대견하다. 함 과장은 “바람개비 서포터즈에서는 청년 스스로 아픈 과거를 후배들에게 이야기한다. 도움을 주며 본인 스스로도 성장한다”며 “서포터즈 활동을 하면서 조금 더 나은 일자리에 도전하고 다양한 역량을 갖춘다. 에너지의 선순환”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자립준비청년에게 꾸준한 관심을 갖고 청년들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청년들에게 홀로서기에 대한 부담을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함 과장은 “예전에 고3인 자립준비청년이 주소를 옮겨 달라고 했다. ‘등본 주소가 시설로 돼 있어 취업에 자꾸 실패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기에 정말 안타까웠다”며 “다른 친구는 여자친구를 사귀었는데 부모가 조심하라는 얘길 했다고 한다. 청년들은 아마도 우리가 모르는 수많은 편견과 싸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승연희 충남자립지원전담기관 관장은 “주변에서 ‘빨리 자립해야 한다’는 부담을 주지 않았으면 한다. 보호연장 제도가 생긴 이유도 자립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라며 “지금은 보호연장을 신청하면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까지도 지원이 가능하다. 조급해하지 말고 언제든 우리 기관의 문을 두드리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아산=전희진 기자 heej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