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워지는 지구 회복의 첫걸음은 ‘생태적 회심’

입력 2023-10-21 03:01
게티이미지뱅크

주부 조아영(41)씨는 최근 뉴스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다음 달 24일부터 플라스틱 빨대를 커피숍에서 사용하면 사장님이 과태료를 문다는 사실을 접했기 때문이다. 조씨는 “평소 일회용품을 덜 쓰려고 노력하지만 규제가 강화된다니 어쩐지 마음가짐이 달라진다”고 했다. 직장인 김상배(35)씨는 “지난여름 더워도 너무 더웠다”며 “출석하는 교회에서 ‘텃밭 가꾸기’를 한다고 해서 처음으로 참석해봤다”고 말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지난달 올해 여름이 1880년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가장 더웠다고 발표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경고처럼 ‘지구 온난화’는 옛말이 됐고 ‘끓는 지구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기후위기는 더이상 북극곰 걱정이 아닌 우리 집 앞마당의 문제가 됐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적지 않은 신앙인들이 일상생활에서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작은 노력을 실천하고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합동과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등 교단도 최근 총회에서 기후 위기와 관련한 기구 설치와 운영 존속을 결의하기도 했다.

채식주의자 한 명이 바꾼 점심 풍경
경기도 광명 대한성공회 광명교회가 지난 6월 교회 인근 숲에서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다. 민숙희 사제는 “교인들의 생태 감수성을 끌어올리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광명교회 제공

경기도 광명 대한성공회 광명교회 2층 식당에는 전 교인의 이름이 적힌 컵 정리함이 벽면 한쪽에 걸려 있다. 주일마다 무분별하게 쓰이는 종이컵 사용을 없애기 위해 1년 전부터 설치했다. 처음부터 모든 교인이 종이컵을 개인 컵으로 교체한 건 아니었다. 정리함에 종이컵을 가져다 놓은 이도 있었고 “불편하다”며 볼멘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한 해가 지나자 컵 장 안 종이컵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민숙희 광명교회 사제는 “교인 스스로가 자신의 컵을 닦는 연습을 통해 남녀평등의 논쟁거리마저 사라졌다”며 웃었다.

광명교회 식당에 있는 전교인 개인 컵 보관함. 광명교회 제공

기후위기를 향한 변화는 이렇게 천천히 교회에 스며들었다.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채식 점심이 그랬다. 50~60대 교인이 대부분인 광명교회에 채식하는 청년 한 명이 새 식구로 교인 등록을 한 뒤 서너 명씩 조를 짜 준비해온 점심 메뉴가 조금씩 바뀌었다. 육식 식단을 준비하고 정리하는 게 채식보다 훨씬 번거롭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한몫했다. 민 사제는 “어느 주일 남성 조가 닭요리를 점심 애찬으로 준비했다가 설거지 기름기에 두손 두발 들고 결국 채식으로 바꾸더라”고 했다.

주일 설교와 관련 활동을 통한 교육도 꾸준히 했다. 광명교회는 부활절에 친환경 비누를 만들고, 천연비누로 사용되는 숍베리 열매와 수세미 열매를 직접 말려 교인들과 나누고 있다. 민 사제는 “같은 예배에서 같은 설교를 듣는다는 건, 모두 함께 생태 감수성을 높이거나 기후 위기에 대한 문제를 동시에 인식할 수 있다는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지속·반복·일상 속으로

적지 않은 교회가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노력한다. 성공의 핵심은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지속적이며 반복되느냐다. 서울제일교회는 교인들에게 끊임없이 관련 정보를 알리며 변화를 꾀하고 있다. 지난 15일 주보에는 ‘10월 2일부터 8일까지 총 314킬로와트시(kWh) 햇빛 발전으로 어린 소나무 2그루를 심는 효과를 냈다’는 광고가 났다. 교회는 매주 이런 알림을 주보에 적으며 2018년 옥상에 설치한 햇볕발전소의 탄소 절감을 꾸준히 홍보하고 있다. 정원진 목사는 “우리의 작은 노력이 얼마나 효과를 내는지 계속 이야기하는 것이 큰 격려와 동력이 된다”며 “햇볕발전소가 생긴 지 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헌금으로 동참하고 싶다는 교인이 나온다”고 전했다.

서울제일교회가 운영하는 제로웨이스트샵 ‘나아지구’ 전경. 서울제일교회 제공

기후위기 활동이 개교회를 넘어 지역사회로 확산하는 것도 필요하다. 서울제일교회는 지난 5월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 쪽 출구에 ‘기후위기 시계’를 설치했다. 행인들에게 유엔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마지노선으로 삼은 지구 평균기온 1.5℃ 상승까지 남은 시간을 알린다. 같은 시기 예배당 바로 옆 교육관 1층엔 제로웨이스트샵 ‘나아지구’를 열었다.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 주방용품이나 목욕제품을 판매하고 관련 수업을 여는 곳이다.

나아지구 점장이자 교회 생태 환경 선교사로 활동하는 김요한 선교사는 “교회 2층 책꽂이에 작게 마련된 간이 상점을 정식 판매장으로 확장한 것”이라며 “교회에서 운영하는지 모르고 오는 고객도 적지 않다. 지금까지 10곳이 넘는 교회가 제로웨이스트샵 탐방을 다녀갔고 관련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고 했다.

전남 목포의 목포산돌교회는 부활절 성탄절 창립기념일 등에 달아놓는 절기 현수막 내용을 20년째 바꾸지 않고 사용하고 있다. 김경희 부목사는 “교회에 온 지 12년째인데 이전부터 8년째 썼다고 하더라”며 “멀리서 보면 깨끗해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지저분하고 꼬질꼬질하다. 그러나 사용하는 데는 전혀 문제없다”며 웃었다.

기독교환경운동연대 한국교회환경연구소는 이달 발행한 ‘그리스도인들의 지구를 위한 7주 실천 워크북’에서 구체적인 실천 과제를 소개했다. 생명밥상, 서로 나눔, 덜어내는, 자동차 없는, 에너지 줄이는, 생명 돌봄, 생태정의 등 주마다 다른 실천 주제를 부여하고 집과 교회, 지역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나열했다. 한국교회환경연구소 이현아 목사는 “수선과 리폼으로 옷의 수명 늘리기 등 형편에 맞춰 각자 수칙을 세우면 된다”고 설명했다.

강력한 생태적 회심 필요

일상 속 실천이 사소한 것으로 시작한다면 마음가짐에 해당하는 ‘생태적 회심’은 강력하고 확실해야 한다. 장윤재 이화여대(기독교학과) 교수는 무더위가 한창이었던 지난 8월 말 서울 향린교회에서 온·오프라인으로 모인 청년 20여명에게 ‘기독 청년이 왜 기후위기를 이야기해야 하는가’를 주제로 강연했다. 조직신학자이기도 한 그는 “지난 몇 년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와 산불재해가 기후 변화의 일환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며 기독교인의 강력한 생태적 회심을 요구했다.

기독교적 사상이 환경 문제를 촉발했다는 여러 학자 주장도 이날 강연에서 소개됐다. 대표적인 이가 유럽 중세사 학자인 린 화이트 2세다. 그는 1967년 유명 학술지 ‘사이언스’에 기고한 ‘생태적 위기의 역사적 기원’이라는 논문에서 기독교가 가장 인간 중심주의적인 종교라고 비판한 바 있다. 기독교인이 자연을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활용하라는 성경 메시지에 따라 생태계 위기를 초래했다는 주장이다. 이를 둘러싼 다양한 반론이 제기됐지만 그의 주장은 오늘의 기후 위기에서 기독교인의 책무를 돌아볼 수 있게 하는 데 의미가 있다.

장 교수는 “창세기 1장 28절에 등장하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에서 히브리어 다스리다(rada)는 성경 다른 구절에서 나오는 다스리다(marshall)와 뜻이 다르다”며 “폭력이나 힘으로 상대를 지배하라는 말이 아니라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이를 사랑스러워했던 하나님의 마음처럼 피조물을 귀하게 여기고 돌보라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지금은 개인의 윤리적 실천을 넘어 국가적, 나아가 세계 경제적 차원에서 뼈를 깎는 대대적 전환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인 조천호 박사는 “오늘날 기후위기는 과거처럼 결핍이 아닌 욕망의 과잉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며 “기독교인의 경우 물질을 섬기던 삶의 방향을 생명을 추구하는 삶으로 완전한 전환이 필요하며 이는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한 것처럼 담대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대한성공회 최준기 교무원장은 “교회가 그동안 교세 확장에만 관심을 쏟았기에 실망하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며 “앞으로 기후위기 활동처럼 올바름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보인다면 세상이 교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