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기적’으로 불렸던 한국 경제는 최근 ‘침체’라는 수식어를 좀처럼 떼어내지 못하고 있다. 올해 1%대에 머무를 전망인 경제성장률은 2050년 이전에 0%대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까지 나온다.
이인호(사진)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은 이 같은 한국 경제의 문제를 기업의 ‘혁신 부재’에서 찾는다. 거대화한 기업의 혁신 엔진이 꺼진 상황에서 스타트업은 혁신을 이룰 공간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이 부의장은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패자 신세를 면치 못하는 신생 기업들이 재도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부의장은 17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빌딩 컨벤션홀에서 열린 ‘2023 국민미래포럼’ 기조강연에서 혁신과 상생을 지속 가능한 성장의 핵심으로 꼽았다. 그는 “사실 혁신을 통해 경쟁하는 사회에서 상생하는 일은 쉽지 않다”며 “하지만 경제적 부를 확장하려면 상생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제 성장의 키워드로 혁신과 상생이 지목된 배경에는 급변한 한국의 경제 상황이 있다. 1965년에만 해도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40위 수준이던 한국 경제는 2020년 기준 10위로 급상승했다. 2021년 기준으로는 세계 13위로, 10위 안팎의 경제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급성장이 이뤄진 원동력은 자본과 혁신이었다. 이 부의장은 “60~70년대만 해도 자본 기여도가 컸지만 90년대 이후로는 혁신이 성장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성장 공식은 이미 통하지 않게 됐다. 이 부의장은 “장기성장률이 계속 하락하고 있다”며 “2023~2030년에는 1.9%, 2031~2040년에는 1.3%, 2041~2050년에는 0.7%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혁신이 멈춘 것이 저성장의 원인이라는 진단이다. 2009년까지만 해도 10년도 안 된 ‘젊은 기업’의 생산성 증가율은 10%를 뛰어넘었다. 하지만 2010~2014년에는 이들 기업의 생산성 증가율이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이 부의장은 시장을 잠식한 거대 기업이 혁신을 멈춘 채 신생 기업의 성장을 가로막으며 발생한 결과라고 봤다. 이는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가 자본주의의 마지막 모습으로 예견한 현상이기도 하다. 이 부의장은 “애플 등 슈퍼스타 기업들이 신생 기업을 사서 묻어버리는 등 여러 방법으로 혁신을 가로막는다”며 “자본주의 내에서 관찰되는 불평등”이라고 말했다.
결국 중단 없는 혁신을 위해서는 상생이 필수적이라고 이 부의장은 강조했다. ‘슈퍼스타 기업’에 대한 경쟁 정책을 개선해 신생 기업이 혁신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 부의장은 ‘승자’의 초과 이윤을 ‘패자’에게 보상해주는 방식으로 재혁신의 기회를 부여하는 일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부의장은 “패자의 경험은 향후 혁신을 위한 귀중한 자산”이라며 “혁신을 극대화하기 위해 적절한 상생 수준을 정책적으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