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발진 의심 사고’ 손자 잃은 할머니, 과실치사 혐의 벗었다

입력 2023-10-18 04:05
'강릉 급발진 의심 사고'로 경찰에 입건된 할머니가 지난 3월 조사를 마치고 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로 12살 손자를 숨지게 한 혐의로 입건됐던 60대 할머니가 경찰로부터 죄가 없다는 판단을 받았다. 경찰은 ‘차량에 기계적 결함이 없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 결과를 증거로 채택하지 않고 이례적으로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강원도 강릉경찰서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치사 혐의로 입건된 A씨(69)에 대해 증거 불충분 등을 이유로 불송치 결정했다고 17일 밝혔다. 경찰은 A씨의 과실을 인정할 수 있는 근거로 국과수의 감정 결과 제동 계열에 작동 이상을 유발할 만한 기계적 결함은 발견되지 않아 브레이크가 정상 작동했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경찰은 그러나 국과수 감정 결과는 사고 차량의 실제 엔진을 구동해 검사한 결과가 아니라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또 실제 차량 운행 중 제동장치의 정상 작동 여부와 예기치 못한 기계의 오작동을 확인할 수 있는 검사가 아니기 때문에 국과수 분석 결과를 증거로 삼기에는 부족하다고 결론 내렸다. 사고 원인이 A씨의 과실이라고 볼 만한 근거가 국과수 감정 결과에 포함됐지만 A씨 과실이라고 단정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앞서 국과수는 ‘차량 제동장치에서 제동 불능을 유발할 만한 기계적 결함은 없는 것으로 판단되고, 차량 운전자가 제동 페달이 아닌 가속 페달을 밟아 사고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감정 결과를 내놨다.

A씨 측 변호를 맡은 법률사무소 나루 하종선 변호사는 “급발진 의심 사고 형사사건에서 경찰이 국과수의 감정 결과를 채택하지 않고 불송치 결정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A씨는 지난해 12월 6일 오후 3시59분쯤 강릉시 홍제동의 한 도로에서 SUV 차량을 운전하다가 급발진 의심 사고가 났다. 이 사고로 A씨가 크게 다치고 차량에 함께 타고 있던 손자 이모(당시 12살)군이 숨졌다. 사고 당시 A씨 차량은 갑자기 굉음과 연기를 내며 가속해 추돌사고 이후에도 600m를 더 주행한 뒤 지하통로로 추락했다. A씨 측은 차량 결함으로 급발진 사고가 났다며 지난 1월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에 자동차 제조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강릉=서승진 기자 sjse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