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정상 향한 복식 호흡… 아시안패러게임 금빛 스매시 도전

입력 2023-10-16 04:06 수정 2023-10-16 04:06
항저우아시안패러게임에 출전하는 휠체어배드민턴 여자 복식 국가대표 권현아(왼쪽)와 정겨울이 지난 13일 대한장애인체육회 이천선수촌 내 배드민턴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제 몸에 맞는 휠체어를 받기까지 3년 걸렸어요. 이게 한 대에 500만원이거든요. 전까진 선배가 타던 걸 받아서 운동했죠.”

한국 여자 휠체어 배드민턴의 간판 권현아(33·한국장애인고용공단)는 6살 때였던 1996년 낙상 사고로 척수를 다쳤다. 배드민턴 동호인이었던 아버지가 운동을 권유했지만 먹고 사는 문제가 우선이었다. 웹 디자인 회사를 거쳐 명함·전단지를 만드는 인터넷 쇼핑몰을 차렸다. 2016년 심재열 현 국가대표팀 감독과 만났고 이듬해 라켓을 잡았다.

파트너 정겨울(20·한국장애인고용공단)은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2016년 초 척수 종양으로 하반신 불완전 마비를 얻었다. 중학교 진학도 미루고 재활 치료에 전념하던 중 친척 지인의 소개로 배드민턴을 시작했다.

둘의 첫 만남은 2018년 국가대표 신인 기술평가 자리였다. 동생의 첫인상을 묻자 권현아 입에선 대번에 “코흘리개였다”는 농담이 튀어나왔다. 정겨울도 질세라 “(배드민턴은) 내가 먼저 시작했다”고 받아쳤다.

걸어온 길과 장애 정도는 달라도 코트 위 둘의 호흡은 발군이다. 여자 복식 부문 세계랭킹 3위가 그 증거다. 지난해 두바이 장애인 배드민턴 국제대회에선 금메달을 합작했고, 올해 창단한 실업팀에도 함께 입단했다. 항저우아시안패러게임 차 출국을 사흘 앞둔 지난 13일 대한장애인체육회 이천선수촌에서 이들을 만났다.

정겨울의 무기는 정교함이다. 평소에도 뜨개질을 즐기는 등 손 쓰는 일에 능한데, 그 덕에 손끝 감각이 좋다는 평이다. 평정심도 뛰어나다. 권현아는 “나는 경기 내용이 표정에 다 드러나는데 겨울이는 정반대”라고 치켜세웠다. 권현아의 장점은 힘과 속도다. 복식 경기에선 장애 정도가 중한 선수를 집중 견제하는 게 당연한 전략이지만 권현아에겐 통하지 않는다.

코트 안팎을 가리지 않고 에너지 넘치는 이들에게도 가슴 한쪽엔 아쉬움이 있다. 권현아는 세계무대 정상에 선 모습을 뽐내기도 전인 지난해 아버지를 떠나보냈다. 부상으로 고생도 자주 했다. 장시간 전력으로 휠체어를 몰다 보니 욕창이 수시로 찾아왔다.

비인지 종목의 설움도 있다. 장비·시설도 그렇지만 관심에 가장 목말랐다. 정겨울은 “어쩔 수 없다는 건 안다”면서도 “4년에 한 번 있는 패럴림픽 결과로만 평가받는다는 게 속상했다”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이들의 열정은 여전히 뜨겁다. 정겨울에겐 ‘셔틀콕 여제’ 안세영의 옛 인터뷰 한 마디가 힘을 실어줬다. 그는 “‘(다친) 무릎보다 부족한 실력이 더 아프다’고 했던 얘기가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당면 목표는 오는 22일 개막하는 아시안패러게임이지만 그 너머까지도 바라보고 있다. 권현아는 “파리에서 메달을 딴 다음 (남자친구에게) 청혼하고 싶다”며 “아시안게임 메달론 턱도 없다”고 웃어 보였다.

글·사진=송경모 기자 s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