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출간으로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을 죽음으로까지 내모는 학부모들의 괴롭힘에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됐다. ‘괴물 부모’가 그것이다.
괴물 부모라는 용어와 현상은 일본에서 시작됐다. 2006년 신주쿠의 한 초등학교에서 23세 신입 교사가 자살한 사건을 계기로 일본에서 학부모 괴롭힘 문제가 주목받기 시작했고, 2008년에는 NHK가 ‘몬스터 페어런트’라는 드라마를 제작하기도 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일본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괴물’은 초등학교 교실을 배경으로 한 학생, 교사, 학부모의 기이한 갈등을 괴물의 세계로 묘사한다.
홍콩에서도 이미 2011년부터 학부모 괴롭힘이 사회적 이슈가 됐다. 한국에서는 지난 7월 서이초 교사의 자살 사건과 이어진 교사들의 대규모 집회로 이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자 대안학교 교장, ‘공부 상처’ ‘선생님, 오늘도 무사히!’ 등을 쓴 작가인 김현수는 마치 재난문자를 발송하는 것처럼 급하게 이 책을 펴냈다. 170쪽 분량의 얇은 책으로 내용도 국내외 연구들을 요약한 보고서에 가깝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긴급하게 주목해야 할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책은 먼저 괴물 부모 현상을 소개한다. 일본 메이지대의 모로토미 요시히코 교수는 괴물 부모 현상을 보여주는 수백 가지 사건을 열거했는데, 그중에는 자녀가 교실에 몰래 녹음 장치를 가지고 가게 한 부모도 있고, 스포츠 경기 결과를 자기 자녀에게 유리하도록 바꾸라고 요구한 부모도 있다.
우리나라 현직 교사들이 수집한 학부모 민원 사례 중에도 경악할 만한 사례들이 수두룩하다. “왜 귤을 까주지 않으셨나요?”라고 항의하고, 받아쓰기에서 틀린 것을 표시했더니 “아이 마음 다치니 빗금 치지 마세요”라고 교장실에 알린다. 교사에게 “아이폰 쓰지 말아 주세요. 아이가 갖고 싶어 합니다”라고 요구한 경우도 있었다.
모로토미 교수는 자녀의 일에 지나치게 민감한 학부모들이 소비자로서의 권리를 앞세워 자기 자녀에게 유리하지 않은 교사를 그들의 기준에 따라 쫓아내는 방식을 발견했으며 그것이 바로 괴물 부모 현상이라고 정의한다.
책은 이어 괴물 부모가 탄생한 사회적 심리적 원인을 분석한다. 학교에 대한 불신, 학부모의 고학력화, 사회의 학벌화, 교육의 서비스화, 저출산, 극심한 경쟁, 각자도생 등이 사회적 배경으로 꼽힌다. “소비자로서의 학부모가 강조되면서 교육이 얼마든지 ‘클레임’을 제기할 수 있는 분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라거나 “일본 부모들은 점차 학교가 내 아이의 성공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같은 분석은 예리하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괴물 부모의 심리 분석이다. 그들은 하나밖에 없는 자녀를 위하는 것은, 그것이 어떤 짓이든 죄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또 힘들게 키운 아이니까 좋은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신이 된 아이를 누군가가 혹은 세상이 건드리는 것은 부모들에게 신성 모독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독박 육아’ 경험이 고될수록 학교와 교사를 괴롭히는 괴물 부모가 되기 쉽다는 분석도 있다. 한 일본 엄마는 “이렇게 힘든 육아를 통해 나와 맺어진 아이를 누구라도 건드린다면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라고 썼다. 괴물 부모들이 자녀에게 권위적이면서 독재적이라는 특징도 발견된다. “괴물 부모들은 타인들에게는 자기 자녀를 신처럼, 왕자나 공주처럼 대접하도록 요구하면서 정작 자신은 자녀를 거침없이 막 대한다. 이 이중성이 자녀들을 분열시킨다.”
책은 자녀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자녀에 집착하는 이유가 사랑이나 헌신 때문이 아니라고 말한다. “성공한 부모가 되기 위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 또는 “자신의 욕망, 자신의 기쁨을 자극하는 원천이 부재한 때문”이 아닌가, 자녀가 없으면 유지되기 어려운 부부 관계 때문이 아닌가 묻는다.
괴물 부모는 괴물 자녀를 만든다. 괴물 부모는 사회가 괴물화되어 가는 한 징후라는 점에서도 섬뜩하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갑질, 괴롭힘이 이제 학교에도 전염되어 교사가 그 대상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근래에는 이 현상이 병원으로 전염되고 있다. 최근 국내의 소아청소년과 연쇄 폐업 배경에도 괴물 부모가 있다. 학교와 병원을 폐허로 만들어 버린 괴물 부모의 다음 타깃은 어디일까.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