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정(22)씨는 히브리대 박사과정으로 유학하며 이스라엘에 터를 잡은 부모를 둔 이스라엘 영주권자다. 이스라엘국방군(IDF) 일원으로 팔레스타인 거주 지역인 최전방 헤브론을 감시하는 부대에서 복무했으며 이스라엘 독립기념일을 맞아 전군에서 선발한 최우수 군인 120명에게 수여하는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다. 다음은 이씨가 10일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전해온 현지 르포.
하마스의 지난 7일 기습 공격으로 이스라엘이 결집하고 있다. 사회 전반에 “하나 돼야 한다”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부모가 예비군으로 징집되면서 가정에 남은 자녀들을 돌보겠다고 나서는 이들도 있다.
갑작스럽게 많은 예비군을 소집하면서 이들의 보급품이 부족하다는 소식이 돌자 전국적으로 옷가지와 양말 등을 모으는 운동도 확산하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정부를 비판하는 시위가 벌어지던 광장에는 군인들에게 보낼 간식과 음식 등을 담은 상자가 쌓이고 있다. 모두 국가적 위기에 마음을 모으기 위한 행동이다. 해외 체류 중인 예비군들도 자발적으로 입국하고 있다.
이스라엘 공군에서 F-15I 전투기 정비 책임자로 복무한 오빠와 최전방 초소 감시병이었던 나는 아직 예비군 소집 대상이 아니다. 전투병으로 복무한 이들이 1차 소집 대상이다.
이번 일로 큰 충격에 빠졌다. 내가 복무했던 부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거주지역인 최전방 헤브론을 각종 첨단장비로 이상징후를 24시간 감시한다. 이번에 뚫린 가자지구 인근 부대도 이런 역할을 했다. 이들의 감시를 뚫고 침공했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영상 감시 초소는 외부에서 쉽게 들어갈 수 없다. 폭탄이나 미사일 공격으로부터도 방어할 수 있다. 다만 외부는 다르다. 더욱이 그날은 안식일이자 유대 명절이었기 때문에 적지 않은 군인이 휴가로 자리를 비웠었다. 초소 밖을 경비하던 군인들은 대부분 하마스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초소에서 이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동료들은 이스라엘군이 도착해 문을 열어 줄 때까지 10시간 넘도록 두려움에 떨었다고 한다.
거리에도 사람들이 많지 않다. 레바논에 근거지를 둔 헤즈볼라가 공격한 북쪽과 남쪽은 아예 민간인 이동이 없고 내가 사는 예루살렘도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외출을 삼가고 있다. 공습경보가 울리면 방공호 등으로 대피하라는 안내를 듣고 있다. 지난 8~9일에 몇 차례 울렸고 실제 베들레헴에 하마스의 로켓이 떨어지기도 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요르단 서안과 가자 지구에만 사는 건 아니다. 이스라엘 전역에서 유대인과 어울려 산다. 우리 집 주변에도 많은 수의 팔레스타인 사람이 있다. 다만 평소처럼 그들을 대할 수 없다는 게 안타깝다. 하마스의 기습 이후 공공연히 환호성을 지르거나 하마스를 격려하는 말을 듣게 된다. 일상이 깨져 버렸다. 어울려 지내던 사람들이 돌변할 수 있다는 사실 앞에 두려울 뿐이다.
이스라엘은 큰 나라가 아니다.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적지 않은 이들이 지인의 지인이다. 그건 가자지구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안타깝다.
이번 충돌은 기존과 양상이 다르다. 전쟁이다. 왜 이스라엘이 경계에 실패했는지는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일단 전쟁에 이긴 뒤 논의하자는 사회적 합의가 있는 것 같다. 다만 안타까운 건 이 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씻을 수 없는 증오와 혐오가 쌓일 것 같다는 점이다. 평화의 소중함을 깊이 느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