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동원 (14) 강남 4인방 동역의 은혜, 놀라운 사역의 에너지로 폭발

입력 2023-10-11 03:02
이동원(왼쪽) 목사가 1995년 평생 가까이한 동역자인 고 옥한흠 하용조(왼쪽 두 번째·세 번째) 목사, 홍정길 목사와 기념촬영을 했다.

국제 코스타(KOSTA·Korean Students All nations) 사역에서 가장 잊지 못할 모임은 1988년이다. 평생 가까이 동역한 옥한흠 홍정길 하용조 목사님과 함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우리를 ‘강남 4인방’으로 불렀다. 우리가 지은 이름은 아니다. 나는 강남에 살아본 일도 없고 사역지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이었기 때문에 언제나 분당 수지지구 ‘촌교회’로 소개했었다.

사실 우리 네 사람의 교제는 인위적인 의도로 된 것도 아니고 그냥 하늘의 인연(섭리)이라고 말하고 싶다. 네 명의 배경과 교파가 다름에도 동역의 은혜를 누린 것은 그분의 인도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우리의 공통점은 청년 사역으로 사역을 시작했다는 점, 그리고 복음주의적 목회에 대한 공감이었다.

우리는 1960년대 후반부터 한국교회에 소개된 소위 국제 학생선교단체들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홍정길 하용조 목사님은 CCC(빌 브라이트, 김준곤), 나는 10대 청소년 모임인 십대선교회(YFC·토리 존슨, 빌리 그레이엄, 김장환) 운동의 영향을 받았다. 옥한흠 목사님은 네비게이토선교회의 제자훈련을 기초로 본인만의 제자훈련 전략을 키워가고 계셨다.

1960년대에 이미 학생 선교운동이 본격화되면서 연합의 필요성이 제기돼 연합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각 선교단체의 대표 격 지도자들이 미온적이어서 몇 번의 교제로 끝났다. 성도교회 대학부를 지도하던 옥 목사님, CCC에 헌신하던 홍·하 목사님, 그리고 죠이선교회 이태웅 목사님과 교제를 이어갔다. 후일 한국에 귀국해 지구촌교회를 개척하면서 본격적인 협력 사역들을 시도했다.

무엇보다 맏형격인 옥 목사님이 “우리 만날 때가 되지 않았나?” “어떻게 지내고 있나?” 하며 안부를 물으며 시시때때로 점심 자리를 준비해 주셨다. 그렇게 만나 서로 고해성사를 하며 교제하던 자리가 자연스럽게 복음 안에서의 교제, 하나님 나라를 위한 발돋움의 사역이 되지 않았나 싶다. 코스타 사역을 필두로 선교한국 학원복음화협의회 한국해외선교회(GMF) OM선교사역 등 대각성 전도 운동, 강해 설교 등에 우리는 함께 마음을 모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다른 영웅적 선배들과의 만남보다 이 교제를 통해 많은 배움을 가질 수 있었다. 맏형 옥 목사님에게서 솔직하고 투명한 자기 드러냄, 그리고 사역에 집중하는 고결함의 도전을 받았다. 이 목사님에게는 진지함과 정확함, 홍 목사님에게는 인생을 사는 깊고 넓은 멋과 맛을 배웠다. 거의 동년배인 하 목사님에게는 끊임없이 타오르는 창조성의 불꽃에 감염됐다.

오늘날 상담 이론가들은 어떤 유형의 상담보다 효율적 상담을 ‘친구 상담’이라고 한다. 물론 옥한흠 홍정길 이태웅 목사님은 모두 한참 형님들이지만 이분들은 나와 하 목사님을 항상 친구처럼 대하고 격려해주셨다. 거기서 나온 우정의 시너지는 놀라운 사역의 에너지가 될 수 있었다.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