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버드대 최초의 여성 종신 교수인 클로디아 골딘(77)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가 올해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성별 소득 격차 등 여성 노동에 대한 그 동안의 연구 공로를 인정받은 결과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9일(현지시간) 골딘 교수에게 2023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여한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골딘 교수는 수 세기에 걸친 여성의 급여와 노동시장 참여에 대해 처음으로 포괄적인 설명을 제시했다”며 “지금까지도 존재하는 성별 소득 격차의 주된 원인들을 밝혀냈다”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골딘 교수는 노동시장의 작동을 연구하는 노동경제학 분야의 권위자로 꼽힌다. 경제사학적 접근을 통해 노동시장 내 성별 격차의 원인을 밝혀낸 연구가 대표적이다. 그는 수백년간의 미국 노동시장 관련 자료를 수집해 시대에 따른 성별 고용률과 소득 격차의 변천을 분석했다. 교육 수준과 노동시장 참여율이 크게 높아진 20세기 이후에도 남녀 간의 소득 격차는 유지되고 있는 것이 골딘 교수의 지적이다. 그는 이를 여성의 향후 직업 전망을 좌우하는 ‘교육적 결정’이 어린 나이에 이뤄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구세대적 가치관을 지닌 부모 세대가 이를 결정하다 보니 발전이 늦어진다는 것이다. 골딘 교수는 여성이 첫 아이를 낳는 순간 소득 격차가 대폭 확대된다고도 덧붙였다.
지난 2021년 국내에도 번역된 저서 ‘커리어 그리고 가정’에서 골딘 교수는 ‘탐욕스러운 일자리(greedy job)’를 뿌리 깊은 남녀 간 소득 격차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탐욕스러운 일자리란 높은 보수를 제공하는 대신 고강도의 노동과 불규칙하고 긴 근무 시간을 요구하는 직업이다. 가족 내에서 가사·양육 등의 분야에 더 많은 책임을 지는 여성이 소화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자리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여성이 이 같은 탐욕스러운 일자리 대신 ‘유연한 일자리’를 택하면서 자연스레 소득 격차가 발생한다는 것이 그의 이론이다.
이전부터 매년 노벨 경제학상 후보로 거론돼온 골딘 교수는 스스로도 ‘유리 천장’을 극복해온 개척자로 이름이 높았다. 1946년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코넬대에서 미생물학과를 전공한 뒤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0년에는 여성 최초로 하버드대 종신 교수 자격을 얻었다. 1990년대 하버드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은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주류경제학 내에서 처음으로 여성 노동에 대해 분석을 시도한 선구자적 인물”이라며 “매일 새벽까지 하버드 내 경제연구소에 남아 공부를 하는 성실함으로도 유명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수상으로 역대 세 번째 여성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가 되는 영예도 안았다. 지난 2009년 엘리노 오스토롬 미국 인디애나대 교수가 경제 지배구조 연구를 앞세워 여성으로는 처음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고, 2019년에는 에스테르 뒤플로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가 역대 최연소이자 두 번째 여성 수상자가 됐다. 다만 종전 수상은 모두 공동 수상으로, 여성 혼자서 경제학상을 수상한 것은 골딘 교수가 처음이다.
이날 경제학상 수상자를 마지막으로 올해 노벨상 수상자는 총 11명으로 이중 4명이 여성이었다. 지난해에 비해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17%→36%)이 커지고 평균연령(70.9세→67.3세)도 젊어졌다.
세종=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