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북한도 언제든 하마스 될 수 있다

입력 2023-10-10 04:02
8일(현지시각)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들이 발사되고 있다. AP뉴시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파장이 심상찮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사망자수가 1000명을 훌쩍 넘겼고 이스라엘은 지상전을 준비 중이다. 미국은 ‘슈퍼 핵 항모’를 지중해로 배치했고 이란은 하마스 투쟁을 지지하며 양국 대리전으로 비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사태 직후 텍사스산 원유(WTI) 선물이 전날보다 4% 이상 급등하고 이스라엘 주가지수는 3년래 최대 낙폭을 기록하는 등 글로벌 시장도 요동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세계 경제와 안보의 불안이 가중된 상황에서 이·팔 분쟁은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에게 이번 사태는 남의 일이 아니다. 전쟁까지 치를 정도의 역사적 갈등, 적대 세력과 영토를 마주하는 지리적 여건, 테러 등 잇단 도발. 이·팔 분쟁의 요소에 꼭 맞는 세계 유일의 지역이 한반도다. 더욱이 하마스의 습격 과정은 주의를 끌기에 충분하다. 이스라엘의 첨단 방어시스템 아이언돔을 무력화시킨 로켓포의 동시다발 공격, 스마트 장벽을 뚫은 페러글라이더 침투 등은 압도적 군사력의 이스라엘을 상대로도 통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런 비정규전을 통한 기습 공격이 북한의 대남 도발 공식이란 점에서 조금도 경각심을 늦출 수 없다.

북한군은 하마스보다 월등한 포격 전력을 수도권과 인접한 휴전선 근방에 갖췄다. 북한 장사정포는 시간당 1만발 이상 발사가 가능하다. 약 20만명의 북한 특수부대는 글라이더나 잠수정을 통한 남한 후방 침투 훈련을 해왔다. 북한은 지난해 핵 선제 사용을 법제화했고 올해는 핵무기 고도화를 헌법에 명시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8월 남반부 영토 점령을 강조하기도 했다. 하마스가 핵까지 보유한다면 이스라엘이 느낄 공포는 어떨까. 우리의 안보 사정은 이스라엘보다 훨씬 좋지 않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정부와 군은 철통 안보 태세에 대한 신뢰를 국민에 주고 있나. 지난해 12월 북한 무인기가 우리 영공을 휘저어도 손도 못썼다. 테러가 목적이었다면 간담이 서늘할 뻔했다. 훈련 중 미사일이 뒤로 날아가는 어이없는 사고도 있었다. 국가 안보와 정보 수집의 최일선인 국가정보원은 인사 난맥상에 휘청였다. 정치권은 정쟁으로 날을 새며 안보는 모르쇠다. 내부적으론 사법부 개편 파동으로 어수선할 때, 외부적으론 우방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갈등으로 정신 없을 때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습격을 받았다. 환경과 여건이 흡사한 우리는 같은 일을 당했을 때 치밀하게 대처한다고 장담할 수 있나. 중동 사태를 우리의 안이한 안보관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안보에 구멍이 뚫리면 우리가 쌓은 공든탑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만다. 오늘의 북한이 내일의 하마스가 될 수 있음을 한시도 잊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