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간의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끝났습니다. 선수들의 소중한 열정에 우리는 크게 감동했습니다. 특히 배드민턴 경기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많이 놀랐습니다. 배드민턴이라는 스포츠가 이렇게 치열하고 힘든 줄 몰랐습니다. 몸을 엎드리고 비틀고 날리면서 공을 받아내고 넘기는 선수들을 보는 내내 숨을 죽였습니다. 온몸에 땀을 흘리며 매 순간 집중하는 우리 편과 상대편 모든 선수의 모습이 숭고하게 느껴졌습니다. 이 순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 선수들의 노력에 우리의 시선이 집중됐으면 합니다. 메달 색깔이나 결과에 상관없이 이들의 도전 자체에 박수를 보냅니다.
창세기 29장 20절은 “야곱은 라헬을 아내로 맞으려고 7년 동안 일을 했지만, 라헬을 사랑하기 때문에 7년을 며칠 같이 느꼈다”고 말합니다. 야곱의 성정을 요약해 주는 구절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얻기 위해 7년을 며칠처럼 여긴 그의 성품은 로맨틱하고 가상합니다.
적절한 임금도 없이 긴 시간 노동력을 착취당한다면 반대일 겁니다. 7년이 며칠이 아니라 며칠이 7년 같을 겁니다. 그런데도 야곱은 자신의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기꺼이 7년을 열정을 다해 바칩니다. 더 나아가 이 기간은 라반의 교묘한 속임수로 14년이 됩니다. 그런데도 야곱은 사랑하는 라헬을 얻기 위해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대상이 꼭 사랑하는 여인일 필요는 없습니다. 자신이 꿈꾸고 간절히 원하는 모든 희망에도 야곱의 상황을 대입할 수 있습니다. 간절한 꿈을 위해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는 건 오늘의 갑갑한 현실에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간절한 소원은 자발적인 최선을 불러오기 마련입니다.
현실의 원리가 우리의 노력을 우습게 만드는 시대라는 우려가 나옵니다. 하지만 여전히 수고와 열정의 힘은 유효합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최선의 노력은 지금의 성과와 관계없이 우리의 통찰과 습관에 내공을 쌓아 줍니다. 결정적인 순간 내공은 하나님의 시간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야곱은 라반의 집에서 20년을 지냈습니다. 그 과정은 고달프고 부조리했습니다. 하지만 이 기간 야곱은 최고의 목양 경험과 기술을 지닌 리더로 거듭납니다. 그는 단지 더 나은 임금을 위해 일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여인을 얻기 위한 7년은 야곱에겐 더 큰 일을 맡을 훈련이었습니다. 여러 흠결이 있었음에도 매 순간 열심히 인내한 야곱의 성실함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큰 도전을 줍니다.
“라헬을 사랑하기 때문에 7년이라는 세월을 마치 며칠 같이 느꼈다.” 우리에게도 이런 간절한 사랑이 있습니까. 우리의 모든 수고는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그 무엇인가에서 비롯됩니다. 아시안게임에 참가한 선수들이 이런 소원을 품고 지난 수년을 며칠처럼 여기며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듯 말입니다. 삶의 일상과 현실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하나님의 사랑과 거룩한 소원이 회복되길 기도합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12~14)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말씀은 경주에 임하는 선수 선서와 같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삶의 뜻을 세웁시다. 지금은 부족해도 열심히 땀을 흘리며 준비합시다. 마침내 하나님의 때를 이루는 인생 경주를 즐겁고 뜨겁게 완주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윤영훈 원장(성결대 신대원)
◇윤영훈 원장은 경기도 안양시 성결대학교 신학대학원장과 문화선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서울 창신성결교회(이종복 목사)에선 협동 목사로 시무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