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적된 적대감 폭발… “중동 데탕트 무산시키려는 이란이 배후”

입력 2023-10-09 04:06 수정 2023-10-09 04:06
팔레스타인 군인들이 8일(현지시간) 서안지구 제닌에서 19세 소년의 시신을 운구하고 있다. 이 팔레스타인 소년은 전날 서안지구 북부 나블루스에서 발생한 이스라엘군과의 무력 충돌로 사망했다. AFP연합뉴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7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배경에는 최근 몇 년간 격하게 누적된 갈등과 적대감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해 말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극우적인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재집권한 이후 양측은 군사 공격과 반격을 주고받으며 무력 대치를 이어왔다. 하마스의 공격 배후에는 중동 평화 분위기를 깨려는 이란이 있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워싱턴포스트(WP)는 급작스럽게 발생한 이번 충돌이 있기까지 수많은 대치가 있었다고 분석했다. 네타냐후 총리가 이스라엘 정착촌 확대, 팔레스타인에 대한 차별적 조치 등을 내놓으면서 이로 인한 ‘피의 보복’의 악순환이 끊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지구에서 요르단강 서안지구로 수출되는 모든 물품의 통과를 금지하며 하마스의 목줄을 조였다. 하마스의 정치 및 국제관계 담당 바젬 나임은 지난달 WP에 “그동안은 조용했지만 이제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수면 아래에 엄청난 압력이 있다”고 경고했다.

하마스는 표면적으로 이스라엘의 만행 중단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면에는 자신들의 입지를 흔드는 중동 평화 움직임에 제동을 거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미 인터넷 매체 복스는 공습 배경 중 하나로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 정상화를 꼽았다. 이스라엘은 2020년 미국 중재로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모로코 등과 ‘아브라함 협약’을 맺고 외교 관계를 정상화했다. 이어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와도 관계 정상화 논의에 속도를 내고 있었다.

여기에 가장 큰 걸림돌이 팔레스타인이다. 사우디는 아브라함 협약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팔레스타인이 ‘2국가 정책’에 따라 독립하면 이스라엘이 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마스 최고지도자인 이스마엘 하니예는 공습 당일 저녁 TV 연설을 통해 “저항 세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지도 못하는 객체(이스라엘 지칭)와 맺은 모든 관계 정상화의 합의가 팔레스타인 분쟁의 해법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배후로는 중동 데탕트를 무산시키려는 시아파 종주국 이란이 지목됐다. 하마스를 지원해온 이란은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관계 정상화에 예민한 반응을 보여왔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이날 네타냐후 총리와 전화 통화를 하고 전방위 지원을 약속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긴급 연설을 통해 “미국은 이스라엘과 함께한다. 군사력에는 군사력으로, 정보에는 정보로, 외교에는 외교로 이스라엘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확보하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계 각국도 하마스를 규탄하고 나섰다.

중국은 즉각 휴전을 촉구하면서 “근본적인 해결책은 2국가 방안을 실천해 팔레스타인을 독립국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이란 최고지도자의 군사고문 야흐야 라힘 사파비는 “우리는 자랑스러운 알아크사의 홍수 작전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