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간 사건 70%는 심리 없이 바로 기각

입력 2023-10-09 04:02
연합뉴스

대법원이 올해 상반기 민사·가사·행정소송 사건 10건 중 7건 이상을 심리불속행 기각한 것으로 파악됐다. 심리불속행 기각은 대법원이 상고에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는 사건에 대해 추가 심리 없이 바로 기각하는 것을 말한다.

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장동혁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대법원은 지난 1~6월 처리한 민사 본안사건 6257건 가운데 4442건(71%)을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했다. 가사 본안사건은 295건(86%), 행정 본안사건의 경우 1473건(75.2%)을 심리 없이 기각했다. 이유 없는 소 제기를 반복하는 소권 남용인의 소송 사례를 빼고 집계한 수치다.

심리불속행 기각은 상고심절차특례법에 따라 대법원이 상고를 판결로 기각하고 원심을 그대로 확정하는 제도다. 원심판결이 헌법을 부당하게 해석하거나 기존 대법원 판례와 상반되게 해석한 경우, 중대한 법령 위반이 있는 경우 등 상고심절차특례법이 정하는 조건에 해당하지 않으면 심리불속행 기각을 할 수 있다. 상고 기록을 받은 날로부터 4개월 이내에만 가능하고 형사 사건에는 할 수 없다.

그동안 심리불속행 기각 제도는 국민 재판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김영삼정부 시절인 1994년 대법원의 재판 효율화를 명분으로 도입됐으나 판결문에 구체적인 이유가 명기되지 않는 탓에 소송 당사자조차 구체적인 기각 사유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심리불속행 기각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상고법원 설치, 대법관 증원 등 상고심 제도 개혁이 수반되지 않으면 오히려 대법원 기능 저하 등 역효과를 낳을 것이란 반론도 만만찮다.

박재현 기자 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