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6일 국회에서 부결됐다. 과반 의석을 가진 더불어민주당이 본회의 직전 의총에서 부결을 당론으로 정해 표결에 나선 결과였다. 이미 열흘을 넘긴 대법원장 공백 사태는 장기화가 불가피해졌다. 새 후보자를 찾아 지명 절차부터 다시 거쳐야 하는 데다 국정감사 등 국회 일정 때문에 두 달 이상 공백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 인준 불발로 사법부 수장 자리가 공석이 된 건 1988년 이후 35년 만에 처음이다. 사법부는 심각한 파행을 겪게 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를 구성할 수 없어 재판 지연이 줄줄이 발생하고, 법관 인사 등 행정 절차가 멈춰 서며, 만약 공백 상황이 11월을 넘긴다면 내년 초 퇴임하는 두 대법관의 후임 제청에 문제가 생겨 사법부 구성 자체가 위협을 받는다. 정치가 실종되고 정략과 정쟁만 남은 극한 대결의 정치판이 결국 국민의 삶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는 사태를 불렀다.
민주당의 ‘당론 투표’는 대법원장 인준안을 정략의 수단으로 삼았다고 자인한 셈이었다. 이 후보자는 재산신고 누락 등 도덕성 시비가 있었지만, 김명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전례와 비교해 치명적 결함이라 보긴 어려웠다. 그럼에도 인사 안건은 자율투표에 맡겨온 원칙을 깨고 부결표를 강제하는 조치를 취했다. 사법부 파행을 적극 조장한 것과 다름없는 행태는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벌써 나오고 있다. 이 대표가 여러 재판을 받게 된 상황에서 대통령의 사법부 인사에 발목을 잡고, 의회 권력을 이용해 사법부를 길들이려 한다는 것이다. 피해가 오롯이 국민에게 돌아가는 사안이었다. 민주당은 사법부마저 정쟁에 끌어들였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기이한 것은 헌정 시스템이 정상 작동을 멈출 위기 상황에서 이를 막으려는 여당의 노력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부결로 몰아가는 야당에 비판을 쏟아낸 것 말고는 무얼 했는지 떠오르지 않는다. 심지어 “여당이 이상하리만큼 소극적이더라”며 의아해하는 야당 의원도 있었다. 대화하고 설득하는 정치의 기능을 아예 포기한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의석 열세를 핑계 삼아 야당에 책임을 넘기는 집권당을 누가 신뢰하겠나. 이제라도 책임지는 자세로 사태를 수습해야 할 것이다. 공백 기간이 최소화되도록 새 후보자 지명을 서두르고 국회 인준 절차도 최대한 앞당겨야 한다. 무엇보다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정치의 복원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