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6일 서울 도봉구민회관에 느린 학습자(경계선 지능인) 아동과 학부모 등 모두 9명이 모였다. 느린 학습자 자조 모임 자리였다. 느린 학습자 자녀를 둔 부모들은 교우관계 등에서 소외받는 자녀를 위해 자조 모임을 만들었다. 이런 모임이 현재 전국에 15곳 있다.
도봉구의 느린 학습자 자조 모임 ‘느루별’은 매달 셋째 주 토요일에 진행된다. 모임을 이끄는 박정숙(가명)씨는 “학교에서는 외로운 섬처럼 떠다니던 아이들이 모임에 나와 자신과 비슷한 친구들을 만나고 서로 놀고 대화하면서 사회성을 기르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은 근황 얘기를 시작으로 끝말잇기 그림책을 서로 돌아가면서 읽고, 동시도 쓰면서 시간을 보냈다. 모임에 참석한 느린 학습자 신정연(13·가명)양은 이전 한 달 동안 대안학교에서 커피 내리는 법과 목공을 배웠다고 말했다. 신양은 “우리 학교는 저처럼 상황이 안 좋은 학생들한테 상담도 해주고 진로 활동도 도와준다”고 소개했다.
박씨는 신양 얘기를 웃으며 경청하면서도 “정연아, 우리는 상황이 안 좋은 친구들이 아니야. 다른 친구들하고는 조금 다를 뿐이야”라고 정정해줬다. 박씨 역시 초등학교 6학년인 느린 학습자 아들을 두고 있다.
자조 모임은 아이들뿐 아니라 느린 학습자를 자녀로 둔 부모에게도 큰 위로가 된다고 했다. ‘남들과 조금 다른’ 자녀를 어떻게 양육해야 할지 서로 경험과 정보를 공유하고, 양육 과정에서의 어려움도 편하게 꺼낼 수 있기 때문이다.
7살 느린 학습자 아들을 둔 이연정(가명)씨는 “아이가 느린 학습자라는 걸 처음 알고는 마음을 다잡기 너무 힘들었다. 깜깜한 밤에 돌다리를 더듬어가며 걷는 기분이었는데 자조 모임 덕분에 그나마 등불이라도 생긴 듯하다”고 했다.
이날 처음으로 자조 모임을 찾은 윤현지(가명)씨도 “오길 잘했다”며 만족스러워했다. 윤씨는 “일반 아이들하고 같이 있다 보면 어느 순간 제 아이만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다. 그 친구들은 따돌린 게 아닌데 그냥 혼자 따돌려져서 저한테 온다”며 “그런데 여기 와보니 모든 아이가 서로 어우러져서 너무나도 편하게 놀더라”고 말했다.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지능은 고정돼 있지 않고 변하기 때문에 조기 발견을 통한 학습지원과 사회적 지원이 이루어지면 (평균인) IQ 85를 넘는 경우도 꽤 있다”며 “학습과 사회성에 대한 지원이 이루어지면 느린 학습자들이 일상을 살아가는 데 보다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