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인사하는 법’… 좀 느린 정원씨의 눈물겨운 다이어리

입력 2023-10-06 00:03
느린 학습자 안정원(27·왼쪽)씨와 정재현(30·이상 가명)씨가 지난 9월 서울 동대문구에 있는 ‘휘카페’ 1호점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다.

느린 학습자(경계선 지능인) 안정원(27)씨와 정재현(30·이상 가명)씨는 2년 차 바리스타다. 지난해 8월부터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에 있는 ‘휘카페’ 1호점에서 일하고 있다. 동대문종합사회복지관이 서울시립대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는 곳이다.

느린 학습자인 두 사람에게 바리스타 일이 처음부터 쉽진 않았다. 통상 바리스타 자격증 교육은 8회면 끝나지만, 이들은 별도의 실습 과정을 포함해 모두 25차례 수업을 받았다. 카페 출근 초기에는 음료 5잔을 만드는 데 30분가량이 걸릴 정도로 손이 느렸다고 한다. 이제는 음료 한 잔을 2분 내로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해졌다.

최근 휘카페에서 만난 정씨는 “처음엔 매장 결제단말기(포스기)를 잘못 누르기도 하고 손님이 몰리면 머리가 새하얘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먼저 해보자고 마음을 다잡았다”고 말했다.

이들의 교육을 담당했던 서민정 동대문종합사회복지관 사회복지사는 “처음엔 불안한 마음에 출근을 복지관이 아닌 카페로 아예 했다. 4개월 정도 그렇게 지냈는데, 지금은 1주일에 한두 번만 짧게 방문해도 될 정도로 청년들이 일에 능숙해진 상태”라고 했다.

안씨와 정씨는 이제 카페 인턴 바리스타에게 실무를 알려주는 어엿한 선배가 됐다. 인턴으로 근무 중인 청년 역시 느린 학습자다.

안씨가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걸 자각한 건 중학교 때였다. 또래 친구들과 똑같이 수업을 들어도 안씨만 유독 이해가 느리고 행동도 빠르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처음엔 남들과 다르다는 게 많이 슬펐다”면서 “그래도 시간이 지난 뒤엔 ‘남들보다 느리니까 더 많이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과외 수업도 받고 열심히 공부한 결과 고등학교 시절 딱 한 번 수학 시험에서 반 3등을 하기도 했다.

호텔 요리사가 되고 싶었던 안씨는 경기도 소재 한 전문대 호텔조리학과로 진학했다. 그는 “학교에서 조별로 요리를 정해진 시간 안에 만드는 수업을 했는데 제가 손이 느리다 보니 조원들 원망을 많이 받았다. 그런 점이 조금 힘들었다”며 멋쩍게 미소지었다.

대학 졸업은 했지만, 현실적으로 호텔 요리사가 되기는 어렵겠다는 판단에 바리스타로 진로를 변경했다. 안씨가 늘 갖고 다니는 보라색 다이어리엔 그간 노력한 흔적들로 가득했다. ‘출근 인사-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다시 만나도 가볍게 인사한다’ 등 기본적인 직장 예절부터 바리스타 관련 전문적인 지식까지 꼭꼭 눌러 쓰여 있었다.

정씨는 이번 달부터 대형 운전면허증을 따기 위해 운전면허 학원에 다닐 계획이다. 나중에 전국을 돌면서 푸드트럭 카페를 운영하고 싶다는 새로운 꿈이 생겼기 때문이다. 1종 면허는 이미 취득한 상태다. 대형 운전면허증은 1종 면허 취득 후 1년 이상 지나야 도전할 수 있다. 매사에 긍정적인 정씨는 느린 학습자인 걸 알았을 때도 스스로 괜찮다고 다독였다. “조금 서툴고 느리긴 하지만 결국 이뤄내고 이겨낼 거로 생각합니다.”

글·사진=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