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전자 바이올리니스트인 영국의 바네사 메이(45)는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아버지 국적을 따라 태국의 알파인스키 대표로 출전했다. 2002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도 나서려 했지만 당시엔 태국이 이중국적을 허용치 않아 뜻을 이루지 못했다. 엄격한 어머니 몰래 스키 선수의 꿈을 키운 메이는 최하위인 67위에 그쳤으나 “올림픽에 출전한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메이 같은 스타가 아니더라도 외국 국가대표 중 별도의 직업이 있는 ‘투잡’ 선수들이 의외로 많다. 생활체육이 보편화된 덕분이다. 2016 리우올림픽에 참가한 벨기에 태권도 팀의 라헬레 아세마니는 우체부였고 2020 도쿄올림픽 여자 사이클 개인도로 우승자인 오스트리아의 안나 키센호퍼는 대학 연구원이었다. 올해 3월 열린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도쿄 라운드에 출전한 체코의 4번 타자 마르틴 체르벤카는 잡지사 홍보 담당자, 투수 마르틴 슈나이더는 소방관이다.
다른 종목에 비해 시간적 여유가 많고 일반인도 쉽게 즐길 수 있는 겨울스포츠 컬링은 ‘투잡러’ 판이다. 지난해 베이징 동계올림픽의 덴마크 남자 컬링팀은 1명을 제외한 선수 모두가 물리치료사, 스카이다이빙 지도자 등 전업 직장인들이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컬링에서 귀여운 용모로 인기를 끈 일본의 스킵(주장) 후지사와 사츠키는 보험 설계사로 활동했다. 소치 올림픽 미국 대표팀에는 과학 교사, 토목기사가 포함됐다.
지난 4일 항저우아시안게임 컴파운드 양궁 혼성전에서 은메달을 딴 주재훈은 한국수력원자력 청원경찰이다. 실업팀 혹은 프로팀에서 국가대표 선수들이 운동에만 전념하는 한국적 토양에 보기 드문 직장인 메달리스트다. 대학생 때 우연히 양궁 동호회에 가입했고 유튜브로 자세를 배웠다. 뒤늦게 재능을 발견한 뒤 태극마크까지 달았다. 대회 출전을 위해 1년 무급 휴직을 한 주재훈은 연봉과 맞바꾼 메달에 “후회가 없다”고 했다. 외국 선수처럼 일하면서 즐길 줄 알고 끝내 꿈을 이룬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
고세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