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한 시각장애인 전도사가 털어놓은 고민에서였다. 부산 흰여울교회를 담임하는 정민교(42) 목사는 같은 교회에서 사역하는 전도사로부터 “시각장애인 사역자는 읽을 수 있는 도서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 점자책, 그중에서도 기독서적은 더더욱 접하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정 목사는 장애인 복음화를 위한 밑그림을 그렸다. 그는 2022년 11월 펀딩을 시작으로 ‘AL소리도서관’의 시작을 알렸다.
AL소리도서관은 AL미니스트리에서 운영하는 국내 최초 시각장애인 전용 기독교 전자도서관이다. AL은 영어 Abounding Love의 약자로 '넘치는 사랑'을 의미한다. 이곳의 모든 책은 시각장애인용 전자도서인 ‘데이지(DAISY)’로 변환된다. 데이지는 점자정보단말기를 통해 점자로 읽거나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통해 음성으로 이용할 수 있는 형태의 도서다. 현재까지 도서관에는 134권의 책이 갖춰져 있으며 26곳의 출판사 및 기독교 단체와도 협약을 맺고 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독서의 장
정 목사는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가진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시각장애인 콘텐츠의 필요성에 관해 설명했다. 그는 “코로나19 기간 시각장애인은 유튜브 등 인터넷 접속마저 어려운 실정이었다”며 “시각장애인 복음화를 위해 힘써야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도 이렇게 기독교 서적 접근이 어려운데 해외에 있는 시각장애인 선교사는 얼마나 더 어려울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면서 “해외에 있는 시각장애인까지도 사역 대상”이라고 덧붙였다.
국내 최초 시각장애인 기독서적 도서관이 세워지기까지 물론 순탄하지 않았다. 정 목사는 도서관을 운영하면서 크고 작은 오해를 받기 일쑤였다. 장애인을 이용해 돈벌이한다는 모욕과 다름없는 비난도 감내해야 했다. 출판사를 설득하는 과정에서는 저작권 관련법이 번번이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대부분 오해에서 비롯됐다.
소리도서관의 모든 도서는 장애등급을 받은 시각장애인만 열람 가능하다. 일반인은 해당 도서의 파일을 여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이는 저작권 침해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실제로 저작권법 제33조(시각장애인 등을 위한 복제 등)에 따르면 “공표된 저작물은 시각장애인 등을 위하여 점자로 복제·배포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소리도서관은 100% 후원으로 운영된다. 정부의 지원은 일절 받지 않는다. 선교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신앙의 경계를 허무는 인식개선
AL소리도서관의 비전은 두 가지다. 장애가 있는 성도와 목회자의 신앙교육 및 목회 지원을 위해 다양한 장애인용 기독서적을 제작해 무료로 보급하는 것이다. 또 시각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을 통해 사회 통합을 이루는 것이다. 믿음 안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가 허물어져야 한다는 것이 정 목사가 강조하는 바다.
정 목사의 장애인 복음화를 향한 마음은 각별하다. 부인인 김성심(56) 사모도 중도 시각장애인이다. 앞을 보지 못하는 답답함을 옆에서 그 누구보다 실감했던 정 목사다.
실제 흰여울교회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장애인식 개선에 힘쓰고 있다. 2012년 부산 최초로 시각장애인 합창단을 설립했다. 지난 3월에는 ‘우리 교회에 시각장애인 성도가 온다면’이라는 제목의 시각장애인 안내 책자를 제작해 나누어 주기도 했다. 정 목사는 “기독교는 생명이 있고 구원이 있는 종교”라며 “시각장애인도 그 구원의 은혜를 누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