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원 의장직은 이로써 공석임을 선포합니다.”
의장 해임동의안 표결을 주재한 공화당 스티브 워맥 의원이 3일(현지시간) 의사봉을 두드리며 결과를 확정하자 미 연방의회 장내는 침묵에 휩싸였다. 민주당과 연합해 찬성표를 던진 공화당 맷 게이츠 의원 등 8명은 조용히 자리를 떴다. 헌정 사상 첫 의장 해임안 가결은 미국 정치의 극단적인 분열상을 그대로 투영했다.
투표 시작 전 토론에서 공화당 내 강경파 의원 모임인 ‘프리덤 코커스’는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을 비난하며 동료 의원들과 맞서는 이례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매카시 의장 지지파는 그를 해임하는 게 더 큰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게이츠 의원은 “매카시가 카오스다. 우리가 신뢰할 수 없는 자들이 혼돈”이라고 일축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가만히 앉아 싸움을 지켜봤다. 앞서 하킴 제프리스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는 지도부 회의 뒤 동료 의원들에게 “그들(공화당)이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극단주의를 탈피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며 해임안에 찬성표를 던질 것을 지시했다. 민주당 내 진보 모임을 이끄는 프라밀라 자야팔 의원도 “그들이 무능의 돼지우리에서 뒹굴게 내버려 둬라”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은 “민주당은 매카시 전 의장이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예산안 합의를 파기하자 그를 신뢰할 수 없는 사람으로 여겼고, 대통령 탄핵 조사를 승인하기로 한 결정에도 분노했다”고 설명했다. 공화당 강경파는 민주당 연합을 지렛대 삼아 단 8표로 의장 축출에 성공할 수 있었던 셈이다. 매카시 전 의장은 해임동의안이 가결된 후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 정부는 타협점을 찾도록 설계됐다”며 “나는 (민주당과) 협상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강경파 의원들을 겨냥해 “그들은 역사상 가장 큰 예산 삭감에 반대표를 던졌고, 국경 보안에 반대표를 던졌다”고 비판했다.
매카시 전 의장은 의장직에 다시 출마하지 않겠다는 뜻도 밝혔다. 차기 의장직을 향한 공화당 내 권력투쟁이 시작됐지만 당 내홍을 봉합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매카시의 몰락은 통제 불가능한 공화당의 현실을 반영한다”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따르고, 타협을 혐오하는 공화당원들을 통제할 수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몇몇 이름이 후임자로 거론되고 있지만 누가 당을 통합할 수 있을지는 분명하지 않다”며 하원 의장 공백 장기화 가능성을 경고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