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가 하나님의 문화명령을 수행해 하나님나라를 확장해가는 선교사역을 돕기 위해 설립됐다. 대중문화의 역기능으로부터 교회의 정체성을 지켜내고, 나아가 올바른 기독교 문화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글을 한 달에 한 번 소개한다.
드디어 한국에서도 ‘히어로물’이라 불릴 만한 작품이 나타났다. 디즈니플러스가 2015년 공개된 동명의 원작 웹툰 ‘무빙’을 드라마로 제작한 것이다. 드라마는 지난주 막을 내렸지만 매주 ‘무요일’(무빙의 새 회차가 공개되는 수요일)을 기다리던 시청자들은 벌써부터 ‘강풀 유니버스’로 이어지는 다음 시즌이 제작되기를 염원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초능력을 가진 인물들을 하나의 세계관으로 엮어낸 강풀의 서사는, 대부분 ‘우리 시대 속 착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돼 있다. ‘무빙’도 마찬가지였다. 빌런이라 불리던 ‘프랭크’나 ‘북한 기력자들’마저도 인간성을 포기하지 않은 안타까운 존재들로 그려냈으니 말이다. ‘민 차장’을 제외하고는 극악무도한 인간은 없었다. 실제로 이러한 점 때문에 강풀의 작품 속 인물들이 다소 ‘평평하고 납작하다’는 평가가 뒤따르기도 한다.
또한 ‘무빙’이 담고 있는 특유의 온정주의나 가족주의는 요즘 대중문화 콘텐츠가 가진 감성과는 그 결이 살짝 다른 편이다. ‘가족을 위해 무조건적으로 자신을 희생하는 이야기’는 이제 웬만해서는 대중들에게 잘 통하지 않는 서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놀라운 사실은 ‘무빙’의 그 따뜻함이 대중들, 그중에서도 특별히 청년 세대에게 완벽히 통했다. 무슨 이유에서일까.
‘무빙’은 1980년대부터 2018년까지의 한국의 시대적 배경, 실제 일어났던 사건들을 모티브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판타지임에도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분단의 역사라는 한국의 특수한 이데올로기 상황과 소시민으로 살아가며 겪었을 법한 일들을 ‘가족’과 ‘인간애’라는 주제로 잘 녹여냈기 때문이다.
극 중에서 초능력을 가졌다는 이유로 국가의 ‘전쟁 용병’으로 살아가야 했던 부모 세대는, 철저히 ‘쓸모’에 의해 수집되고 이용당한다. 서로 다른 삶, 서로 다른 능력으로 살아온 이들이지만 국익을 위한다는 명목하에 하나의 목적과 사상으로 지배받게 됐고, 임무 앞에서는 개인의 자유나 선택, 인간성 따위는 거세당해야만 했다. 사랑하는 가족의 곁을 지키지도 못하면서, 오로지 남이 주입해 준 이데올로기로 움직여야 한다는 현실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각성한 부모 세대 블랙 요원들은 더 이상 능력을 사용하지 않기로 선택한다.
하지만 전쟁을 멈추지 않는 남북 정부, 그리고 인간의 ‘쓸모’를 평가 기준으로 두는 이 시대는 기어코 초능력자들의 자녀를 찾아내고야 만다. 그들이 실제 능력자인지 평가하는 방법은 바로 극한의 상황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그런데 진짜 히어로로 각성하는 순간은 극한의 상황이 아니었다. 사랑하는 친구와 가족들, 이웃을 지켜야 한다는 인간성이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초능력자들로 하여금 능력을 발휘하게 만드는 것은 오히려 거세시키려 했던 ‘인간성’이었다. 반면 능력을 포기하게 했던 것은 전통적 이데올로기로 만들어 온 ‘전쟁’이었다. ‘무빙’은 맥락 없는 무조건적 희생이나 단순한 온정주의 신파를 담고 있지 않았다.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우리가 꼭 회복해야 할 인간성에 대해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통해 설득력 있게 그리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쓸모 있는 능력을 갖고 싶어 한다. 그것은 사랑과 공감으로부터 시작된다. 그것은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 끝내는 길로 우리를 인도해 줄 것이다. 여기에는 인간성을 포기하지 않는 작은 자들의 연대가 기반이 돼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작품을 기다렸다. ‘왜 우리가 싸워야 하는가’ ‘우리는 어떤 개인이 돼야 하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 있으면서, 이토록 재미있고 설레고 짠 내 나고 숨죽여 보게 되는 한국형 히어로물을. 강풀이 말아주는 착하고 멋진 이야기를.
임주은 연구원(문화선교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