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개밥’ 짓는 여자… 동물과 사람이 함께 행복해지는 삶 꿈꿔요”

입력 2023-10-07 03:08
정은경 뉴잇 대표가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스튜디오에서 수의영양학을 기반으로 한 바이오테크 산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인터넷 맘카페 못지않게 많은 이들이 펫카페 활동을 하는 시대, 맘카페에서 ‘우리 아이’(자녀) 양육 정보를 공유하는 것 못지않게 펫카페에서 ‘우리 아이’(반려동물) 고민을 털어놓는 게 자연스러운 시대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지난해 우리나라 반려 가구는 총 552만 가구에 달하고 반려동물 양육 인구는 1500여만명을 넘어섰다. 국민 4명 중 1명이 반려동물을 키우는 셈이다.

‘어머니가 자녀에게 사랑과 영양이 듬뿍 담긴 집밥을 해주듯 반려동물에게도 정성 가득한 끼니를 챙길 수 없을까.’ 이 질문에 답을 내놓기 위해 힘을 기울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자연 식재료로 만들어진 최적화된 반려동물 영양 균형 식사를 연구하는 펫 바이오테크(Pet Bio-Tech) 전문 기업, 뉴잇(Nuit)이다.

“안녕하세요. 개밥 하는 사람 정은경입니다. 하하.”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스튜디오에서 만난 정은경(41) 뉴잇 대표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2019년 7월 뉴잇을 설립한 그는 수의영양학 전문 연구개발(R&D) 분야와 데이터베이스(DB) 알고리즘 정보기술(IT)을 활용해 반려동물에게 건강한 맞춤 식사를 할 수 있는 ‘1:1 맞춤 영양건강관리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반려견 일대일 맞춤 영양건강관리를 위해 진단을 받으러 온 강아지 모습.

정 대표는 “인간의 영양학적 연구는 2000년 이상 발전해왔지만 반려동물을 위한 영양 전문 연구 기간은 100년이 채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균형이 잡힌 식사를 통해 건강을 회복하는 매커니즘을 동물에게 적용하기 위해서는 개체에 따른 변수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훨씬 복잡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현재 뉴잇에는 식품영양학 생명공학 DB사이언스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 인재들이 건강한 반려동물 식사 솔루션을 만들기 위해 함께하고 있다. 반려동물의 생애 주기에 따른 영양 맞춤 정보 DB 솔루션을 견고하게 구축하는 팀이다. 정 대표는 “지금까지 상담과 진단을 통해 축적된 반려동물 영양 식단 관련 데이터만 580만개가 넘는다”고 말했다. 20대를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았다는 그가 반려동물 영양학 전문가로 삶의 길을 내게 된 과정이 궁금했다.

“2007년을 잊을 수가 없어요. 덤프트럭이 제 차량을 들이받는 큰 사고를 당하면서 전신이 마비된 환자가 됐습니다. 1년 6개월 넘게 병원 생활을 하는 동안 진통제 항생제 해열제 등 약물치료를 병행했는데 투여한 약이 제 몸에 맞지 않았는지, 면역체계에 문제가 생기면서 결국 ‘베체트증후군’이란 희귀질환까지 얻게 됐죠.”

그의 삶을 일으킨 건 한 권의 책이었다. 교통사고로 전신 마비가 된 여자주인공이 승마로 장애를 극복한 내용의 소설이었다. 그날로 재활 승마에 모든 에너지를 쏟은 그는 8개월여 만에 기적처럼 건강을 회복했다. 그저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신앙이 그의 삶 중심에 세워진 것도 이 시기였다.

“예배당에서 찬양만 해도 눈물이 나고 강단에서 들려오는 메시지가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저에게 그대로 스며드는 느낌이었어요. 하나님께서 제 삶을 주관하는 분이라는 확신을 새기게 됐죠.”

재활 승마로 건강을 되찾은 그에게 동물과 사람이 함께 행복해지는 삶은 인생의 지향점이 됐다. 당시 입양해 키우고 있던 반려견 ‘늉이’에게 찾아온 건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던 나날이 뉴잇의 마중물이 됐다.

“늉이는 간 수치가 수시로 오르내리고 아무리 좋은 사료를 먹어도 설사가 잦았어요. 열과 성을 다해 치료법을 찾다가 자연 식재료로 영양소를 고루 공급하는 식습관이 중요하다는 점을 알았고, 수의영양학 석사 과정에 도전했습니다.”

수의영양학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일본으로 유학, 석사 학위를 받고 온 정 대표는 2019년 인천 송도에 반려견 일대일 맞춤형 자연식 매장을 열면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견주가 반려견의 관련 정보를 입력하면 영양소를 맞춘 식사 레시피를 도출해 식사를 제공하는 방식이었다.

첫 달 매출이 1000만원을 넘었을 만큼 반응은 뜨거웠다. 입소문이 나면서 매달 매출이 두 배로 늘었다. 본격적인 사업 확장을 고민하고 있을 때 코로나19가 찾아왔다. 상승 곡선을 타던 매출이 바닥으로 떨어졌지만 정 대표는 이를 기회 삼아 밀키트 온라인 배송 시스템을 구축하며 미래를 위한 기본기 다지기에 나섰다.

정 대표는 “스타트업의 특성상 채용과 인사 과정에 부침을 겪기도 하지만 지금은 안정화가 됐다. 매일 오전 8시에 직원들이 함께 말씀묵상(QT)을 하며 하루를 시작하는데, 현재 직원들은 모두 크리스천이어서 기도할 때 더 힘이 난다”고 전했다.

뉴잇이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 마련한 ‘퍼센트잇’ 팝업스토어 내부 모습.

지난달부턴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 팝업스토어를 열고 자사가 운영하는 반려동물 맞춤형 식사 ‘퍼센트(%)잇’을 맛볼 수 있게 준비했다. 정 대표에게 가장 큰 행복은 매출 증대가 아니다. 반려동물을 진정한 가족으로 여기는 이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는 것이다.

지난 2월 기네스 세계기록에 역대 최고령 강아지로 등재된 포르투갈의 ‘보비’의 나이는 만 30살이다. 견주는 장수 비결로 ‘사료 대신 자연 식재료로 만들어진 음식’을 꼽았다. 정 대표는 “반려동물의 생애 주기에 맞는 식습관을 안내하면서 비슷한 연령대의 반려동물 대비 유전병 발병 확률, 예방법 등을 정보로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며 “노령견이 많은 일본을 시작으로 미국, 동남아 시장으로의 진출을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