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와 내년 상반기 만기가 도래하는 전세계약 중 깡통전세 위험 가구는 11만1713가구로 추정된다. 깡통전세는 기존 전세보증금보다 만기 시점의 주택 매매가격이 낮아 집주인이 주택을 팔더라도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는 경우를 말한다. 기존 전세보증금이 신규 전세보증금보다 더 큰 역전세 위험 가구는 65만4152가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정부는 주택 시장 급랭 탓에 이 같은 상황이 발생했다고 보고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세입자를 최소화하기 위한 정책 지원을 강화했다. 집주인이 전세금 반환 목적의 대출을 받는 경우 규제를 완화하는 식이다.
문제는 세입자 지원을 위한 정책이 ‘갭투자’에 실패한 집주인을 지원하는 정책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보증금 반환 지원책으로 집주인이 주택을 팔지 않고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게 되면서 시장에 공급되는 주택이 줄어드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국회 예산정책처는 “세입자를 보호하는 동시에 갭투자 실패도 보호해 도덕적 해이를 조장할 가능성이 있다”며 “갭투자 실패가 집값 하락으로 이어지는 시장 작용을 방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전세사기 목적으로 지원책을 악용하는 경우를 걸러내기 어렵다는 우려도 있다. 전세사기범들은 자신들의 행각을 갭투자로 포장하는 수법을 쓰는데 갭투자 실패로 인한 피해를 정책적으로 보전해주면서 유사한 수법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경찰청이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검거한 전세사기범 3466명 중 600명은 무자본 갭투자 방식을 썼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부담이 커지는 점도 문제다. 김학용 국민의힘 의원실이 HUG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7월 2조2637억원 규모의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 사고가 발생했다. HUG는 집주인 대신 1조6512억원의 보증금을 지원했지만 이 중 회수한 금액은 2442억원에 그쳤다. 이로 인해 HUG의 지급여력비율(보험금을 제때 지급할 수 있는지 평가하는 지표)은 지난 6월 212%로 하락해 2020년(532%)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세종=권민지 기자 10000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