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 “아시아 개도국들, 내년 50년 만에 최악 성장률 예상”

입력 2023-10-04 04:04
EPA연합뉴스

세계은행(WB)이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와 늘어난 부채 등으로 인해 내년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들이 50년 만에 가장 낮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WB는 2일(현지시간)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태평양 도서국을 포함하는 ‘동아시아 및 태평양(EAP) 개발도상국’ 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을 올해와 내년 각각 5.0%, 4.5%로 발표했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지난 4월 발표한 전망치(올해 5.1%, 내년 4.8%)보다 하향 조정된 것이다. FT는 “동아시아 개발도상국은 코로나19 대유행, 아시아 금융위기, 1970년대 글로벌 오일쇼크 등 특별한 사건을 제외하면 1960년대 후반 이후 가장 느린 성장세를 보일 전망”이라고 짚었다.

WB는 올해 중국의 실질 GDP 증가율 전망치를 기존과 같은 5.1%로 유지했다. 그러나 내년 전망치는 4.4%, 지난 4월 발표한 4.8%보다 내려 잡았다. 아디티야 마투 WB 동아시아·태평양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의 엄격한 코로나19 방역 이후 경제 반등 효과가 예상보다 더디다”고 지적했다. WB는 중국의 소매판매가 코로나19 대유행 이전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데다 부동산 시장이 악화하고 있으며, 가계부채가 늘고 민간부문 투자가 부진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 같은 전망 조정은 중국뿐 아니라 많은 국가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 정책 이후 타격을 받는 것을 반영한다고 FT는 설명했다. WB에 따르면 지난해 8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법(CHIPS Act) 발효 이후 중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태국 등 국가의 전자제품 및 기계 수출이 감소했다. 반면 미국 보조금에 따른 요건이 면제되는 캐나다, 멕시코 등의 대미 무역은 타격을 입지 않았다.

글로벌 수요의 둔화 또한 제조업 위주의 동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들 경제에 타격을 입혔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서 올해 2분기 상품 수출은 지난해 2분기에 비해 20% 이상, 중국과 베트남에서는 10% 이상 감소했다.

이 지역에서 가계·기업·정부 부채가 모두 빠르게 증가하는 것도 경제 전망을 더욱 어둡게 만든다. WB는 “중국 태국 베트남 등에서 기업과 정부 부채가 모두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며 “정부 부채가 많으면 민관 부문의 투자가 제한될 수 있고 부채 증가로 인한 금리 상승 시 사기업들의 대출 비용이 늘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고위 간부들은 고금리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며 추가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잇달아 내놨다. 미셸 바우먼 연준 이사는 이날 캐나다에서 열린 한 금융 포럼에서 “연준의 잇따른 금리 인상에도 미국 인플레이션이 목표치(2%)보다 훨씬 높은 가운데, 최근 국제 유가가 오르고 있다”며 “한 번이 아니라 여러 차례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마이클 바 연준 부의장도 이날 뉴욕에서 열린 한 경제 심포지엄에서 “올해 한 번 더 금리 인상을 추진할 것인지 여부보다 금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상승해야 하는지에 더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애 기자 am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