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兆 수신 경쟁 재현될라… 은행채 발행 한도 폐지

입력 2023-10-04 04:03

금융당국이 이달부터 은행채 발행 한도 제한 조치를 폐지하기로 했다. 은행채 한도를 계속 막아두면 지난해 말처럼 과도한 수신 경쟁이 재현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은행채 발행이 늘고 채권 금리가 오르면서 가뜩이나 치솟은 대출금리를 더 높일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4분기 은행채 발행 한도를 없애기로 했다. 금융위는 지난해 10월 레고랜드 사태 여파로 채권시장 불안이 심해지자 은행채 발행을 제한했다. 우량채로 꼽히는 은행채 발행이 늘면 일반 회사채 투자 심리가 위축될 것을 고려한 조치였다. 금융위는 지난해 12월 만기 도래 차환 목적의 은행채 발행을 허용한 뒤 올해에는 월별 만기 도래 물량의 125%, 분기별 만기 도래액의 125%로 각각 발행 한도를 완화해 왔다.

발행 한도를 아예 푼 배경에는 고금리 예·적금 상품 만기가 본격적으로 도래하는 상황이 있다. 은행권은 지난해 말 채권시장을 통한 자금 조달 통로가 막히자 예금 금리를 연 5%대까지 높이며 수신 경쟁에 뛰어들었다. 금융권에서는 지난해 말 늘어난 수신 규모를 100조원 수준으로 추산한다. 채권 발행 통로를 열어주지 않으면 다시 수신을 통한 경쟁적 자금 조달이 재현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은행채 순발행 기조는 이어질 전망이다.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채는 4조6800억원 순발행됐다. 은행채 발행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7월까지 한 달을 제외하고는 줄곧 순상환 추세가 이어지다가 지난 8월 순발행으로 돌아섰다.

은행채 발행 물량 증가는 시장금리 상승 압력으로 작용한다. 이미 주요 은행의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금리 하단은 4%대로 올라섰고, 상단 역시 7%를 넘어선 상황이다. 지표금리인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 금리 역시 이달부터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서는 주담대 최고금리가 연내 8%에 육박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발(發) 고금리 장기화 우려 등 시장금리를 높일 요인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은행채 등 우량 채권이 자금 수요를 빨아들일 수 있다는 우려도 가라앉지는 않았다. 다만 이와 관련해 금융위는 지난해 말과는 채권시장 상황이 다르며, 은행채가 무리 없이 소화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금융위는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규제 비율을 높이지 않고 95%로 유지하기로 했다. LCR이 현행으로 유지될 경우 은행채 발행 유인은 줄어든다.

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