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괴뢰

입력 2023-10-04 04:10

허수아비 괴(傀), 꼭두각시 뢰(儡). ‘괴뢰’는 민속 인형극 꼭두각시놀음에 나오는 인형을 뜻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남이 부추기는 대로 따라 움직이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는 뜻도 있다. ‘괴뢰국’은 자주국을 표방하나 사실상 특정 국가에 예속돼 그 나라의 지시대로 운영되는 국가를 말한다. 제국주의가 득세했던 20세기 무렵, 식민지를 통치하는 방식의 하나로 여러 행태의 괴뢰국이 존재했으나 21세기 들어서는 사실상 사라졌다. 지금은 북한이 한국을 비난하는 선전전에서나 나오는 말이 됐다.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의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다룬 조선중앙통신 기사에도 ‘괴뢰’라는 표현이 나왔다. 이렇게 정치 선전전에서나 쓰이던 말이 스포츠 경기에도 사용됐다. 경색된 남북 관계가 정치외교를 넘어 국제 스포츠까지 번졌다.

북한은 항저우아시안게임 남북 여자축구 8강전 결과를 보도하면서 우리나라를 ‘괴뢰’로 지칭했다. 북한 주민이 시청하는 조선중앙TV는 2일 “경기는 우리나라(북한) 팀이 괴뢰 팀을 4:1이라는 압도적인 점수 차이로 타승한 가운데 끝났다”고 보도했다. 경기 영상 자막에도 국가명을 ‘조선 대 괴뢰’라고 표기했다. 북한이 공식 스포츠 무대에서 한국을 괴뢰로 지칭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화해무드였던 2018년에는 평창동계올림픽과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일부 종목에서 남북 단일팀을 구성해 대한민국도 북한도 아닌 ‘코리아’팀으로 출전하기도 했었다. 북한은 그동안 스포츠 대회에서 한국을 ‘남조선’으로 불러왔다.

북한은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북한’ ‘북측’이라는 표현에 강하게 반발했다. 지난달 30일 북한 여자축구 대표팀 리유일 감독은 한국 기자의 질문 중 ‘북측’이라는 표현이 나오자 “북측이 아니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이라며 시정을 요구했다. 전날에도 한 북한 관계자는 ‘북한’이 아니라 정확하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부르라며 반박했다. 그러던 북한이 우리를 ‘괴뢰’라고 지칭하다니 모순이 아닐 리 없다.

한승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