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이 다시 올 거래. 수상이 암살됐다나봐. 조선인이 각지에서 방화하고 있대. 우물에 독을 탔대. 조선인 300명이 진격 중인데 몇 킬로미터만 더 오면 여기로 온다.’ 부끄럽게도 최근에야 제대로 된 간토대지진 대학살 관련 서적을 읽었다. 일본인 작가 가토 나오키가 2015년 펴낸 ‘구월, 도쿄의 거리에서’(갈무리)란 책이다. 100년 전 일본인과 일본 군경이 수천명에 이르는 조선인을 어떻게 살육했는지 증언과 현장 답사 등을 통해 낱낱이 기록돼 있다.
끔찍한 일은 강진에서 비롯됐다. 1923년 9월 1일 일본 간토 지역 남쪽 바다를 중심으로 규모 8을 넘는 지진이 시작됐다. 지진에 이어 화마가 덮쳐 총 29만3000동의 집이 파괴됐다. 사망자와 행방불명자는 10만5000명이 넘었다.
생각지도 못한 재난에 떼죽음을 당하자 일본인 마음속에는 분노와 불안이 부풀어 올랐다. 통신시설조차 모조리 파괴됐으니 ‘조선인이 일본을 습격한다’는 헛소문이 망령처럼 퍼져 나갔다. 자경단과 일본 경찰, 군대까지 나서 닥치는 대로 조선인들을 죽였다. 당시 경시청 관방주사였던 ‘요미우리 신문 중흥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쇼리키 마쓰타로는 훗날 ‘도쿄를 습격하러 온다던 조선인은 나타나질 않았다. 그 정보는 허위로 판명됐다’면서 ‘한 마리 개가 헛되이 짖자 만 마리의 개들이 덩달아 짖기 시작한다는 속담처럼 됐다. 경시청 당국으로서는 참으로 면목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책에는 조선인을 지키려고 목숨을 건 일본인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도 담겼다. 지바현 마루야마의 가난한 소작농들은 조선인 두 명을 지키려고 낫과 괭이를 든 채 자경단에 맞섰다. 다들 밤잠을 자지 않고 교대로 두 사람을 지켰다. 며칠 뒤 경찰서로 두 사람을 보낼 때 마을 사람들은 울며 배웅했다. 조선인 둘은 살아남아 1년 뒤 인사를 하러 왔다. 그때 마을 사람들이 장난스럽게 조선의 춤을 보여 달라고 하니 두 사람이 눈물을 흘리면서 아리랑 아리랑 하며 춤을 춰 줬다고 한다. 모두가 이성을 잃고 살인귀가 됐을 때 인간으로서의 긍지를 지켜준 사람들 또한 있었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났다. 아픈 역사의 피해자였던 우리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겉으로는 다문화 사회를 표방하지만, 인터넷에서 조선족을 겨냥한 혐오와 증오는 임계점을 넘어선 지 오래다. 지난 7월 서울 신림역 칼부림 사건이 벌어졌을 때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조선족이 범인’이라거나 ‘신림에 조선족 많이 살더니’ 등의 댓글이 쏟아졌다. 피의자가 한국인으로 밝혀졌는데도 조선족 2세라는 식의 의혹은 꺼지지 않았다. 조선족을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은 것이다. 이뿐이랴. 남녀노소가 접속하는 유명 커뮤니티엔 ‘조선족 한 마리가 중국어로 통화하더라. 도끼로 찍어 죽이고 싶다’는 식의 글이 버젓이 게시될 정도다. 차별에 지친 조선족이 ‘아무리 짖어봐라. 악착같이 돈 벌어서 그 돈으로 집 살 거다. 서울에 조선족 없는 곳 찾기 힘들 거야’라는 글을 썼다는 게시물도 또 다른 혐오를 부추기는 모습이다.
조선인을 죽인 일본인과 조선인을 지킨 일본인의 차이는 무엇일까. 가토 나오키는 ‘인간관계’라고 정리했다. 학살자는 ‘조선인=적’이라는 기호로 비인간화해 폭력을 선동하지만 ‘지킴이’는 평소 조선인과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증오 범죄는 그렇게 인류애를 말살하고 우리의 일상을 지탱하는 관계를 파괴한다. 한 세기 전 간토 지역에서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간 조선인이 일본의 적이 아니었듯 오늘날 조선족 또한 우리의 적이 아니다. 진짜 적은 우리 안의 혐오와 증오다. 성찰과 자성과 인류애만이 이를 끊어낼 수 있다.
김상기 콘텐츠퍼블리싱부장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