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절대평가 전환 뒤 국어 난도↑
수능 출제진 일타 강사와 유착 의심
“수능 출제에 참여했던 교사 24명
사교육업체들과 평소 문항 거래”
내신 사교육, 학부모 가장 괴롭혀
고교학점제 도입 뒤 더 심해질 듯
수능 출제진 일타 강사와 유착 의심
“수능 출제에 참여했던 교사 24명
사교육업체들과 평소 문항 거래”
내신 사교육, 학부모 가장 괴롭혀
고교학점제 도입 뒤 더 심해질 듯
설마 하던 일이 사실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진이 대형 사교육업체, 속칭 ‘일타 강사’들과 유착된 것 아니냐는 꽤 오래된 의심 말입니다. 그동안 소문은 무성했습니다. 몇 년 전 제보 받아 취재를 해본 일도 있었습니다. 수능 영어가 절대평가로 전환된 뒤 변별력 하락을 걱정하던 수능 출제기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국어의 난도를 급격히 끌어올리며 국어 ‘킬러문항’(초고난도 문항) 논란이 커지던 시기였습니다.
제보 내용은 이랬습니다. 강남의 한 사교육업체에 현직 고교 국어교사들이 수능 대비 모의 킬러문항 하나 당 100만원을 요구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시 해당 학원은 원생들에게 제공하려고 모의 킬러문항 수십 개가 필요했답니다. 수천 만원의 비용, 앞으로도 이런 문제 값을 계속 지불해야 한다는 점, 현직 교사들에게 앞으로도 이런 의뢰를 계속해야 한다는 점 등이 찜찜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다만 킬러문항을 둘러싸고 ‘문항 밀거래’가 횡행하고 있으며 가격도 뛰고 있다고 했습니다.
개연성은 충분해보였습니다. 수능은 거칠게 말하면 일반 문항을 기계적으로 풀어 시간을 절약해 킬러문항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입할 수 있느냐의 경쟁입니다. 킬러문항이 상위권과 최상위권을 가르는 핵심 요소입니다. 국가가 출제하는 본고사라고 보면 크게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맞히면 서울대 혹은 의대를 가는 길이 열립니다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킬러문항을 집중 훈련시켜주는 사교육이 활성화됐습니다. 수능과 유사한 킬러문항 수요는 폭증했습니다.
‘현직 교사들의 은밀한 아르바이트’라는 기사 테마를 정해놓고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예상대로 킬러문항급 취재 난도였습니다. 교육부에 교사 출신으로 들어와 근무하고 있는 전문직 공직자부터 교원 단체, 개인적 친분이 있는 교사들을 훑으며 단서를 찾았지만 ‘그렇더라’는 식의 풍문만 무성할 뿐 기사를 뒷받침하는 결정적 ‘근거’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한 달을 소요하고 ‘일단 두자’며 취재수첩을 덮었습니다.
“수능 출제에 참여했던 현직 교사 24명이 사교육업체들과 평소 문항 거래를 하고 있었다.” 지난달 19일 교육부가 발표한 ‘사교육 카르텔’ 중간 조사결과 발표 내용입니다. 정부가 팔을 걷어붙이자 고구마 뿌리처럼 줄줄이 딸려 나오고 있습니다.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통해 입시학원으로부터 5000만원 이상 받은 교사 130명을 적발했습니다. 이후 교육부는 교사들을 대상으로 사교육업체 거래 자진신고를 받았습니다. 국세청 조사에 겁을 먹은 걸까요. 현재까지 322명이 돈 받은 사실을 털어왔습니다. 이 322명을 수능과 공식 수능 모의평가에 참여했던 교사 명단과 대조해보니 24명이 나왔습니다. 수년간 5억원가량을 받아 챙긴 교사도 있었습니다.
빙산의 일각일 겁니다. 사교육 카르텔 척결이라며 거창하게 칼을 뽑았으니 이정도로 끝나서는 곤란합니다. 이런 의문들이 해소돼야 합니다. ①교사 24명이 사교육업체와 거래해온 문항과 실제 수능 문항과의 유사성은 얼마나 되는가. 즉 사교육업체의 고객들을 위해 거액을 받은 교사들이 어떤 ‘힌트’를 줬는가. ②자진신고 한 24명 외에 숨어있는 교사들은 없을까. ③교사만 사교육업체와 유착됐을까. 수능 출제는 주로 대학 교수가, 이후 검토는 주로 교사들이 맡는 구조인데, 교수들에게는 유혹의 손길이 뻗치지 않았을까.
④도 있습니다. 사실 ④를 뺀다면 빙산의 일각이란 표현은 좀 과할 수 있습니다. 내신 사교육 얘기입니다. 주로 입시 명문고들 주변에서 영업하는 ‘○○고 내신 전문학원’들 얘기입니다. 고교에 진학하는 자녀를 둔 학부모인 것처럼 해당 학원들에 전화를 돌려본 일이 있습니다. “해당 학교의 정기고사 출제 히스토리(족보)는 기본이다” “만약 교사가 새로 오면 직전 학교에서 해당 교사가 출제했던 문항과 교사 성향도 다 분석해준다” 등의 설명들. 교사를 ‘관리’하고 있다는 걸 내비치면서 “고1 내신을 망치면 수능 밖에 답 없다”는 불안감 조성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실상 학부모를 가장 괴롭히는 건 내신 사교육입니다. 초·중·고 12년 동안 학부모들이 가장 무거운 사교육비 부담을 지는 시기는 고1입니다. 수능 때문에 지갑을 열어야 하는 고2~3 때보다 많죠. 학교생활기록부 위주의 수시가 정착하면서 고1 내신의 중요성은 커지고 있습니다. 상위권은 1학년 때 성적을 2, 3학년에서 만회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정부 사교육 통계로도 확인됩니다. 2019년까지만 해도 사교육을 받는 학생의 월 평균 사교육비는 고3 62만9000원, 고1은 58만3000원이었습니다.
하지만 2020년부터 격차가 줄더니 2021년에는 역전됐습니다. 지난해는 고1이 70만6000원, 고3이 68만1000원으로 나타났습니다. 고교 내신을 겨냥한 선행학습 수요로 중3 사교육비도 뛰는 추세입니다.
고교학점제가 도입되는 2025년 무렵에는 더 심각해질 수 있습니다. 정부 계획 대로라면 고교학점제 이후 고1 내신은 기존 9등급 석차등급제를 유지하고 고2~3 내신은 절대평가로 전환됩니다. 등수가 나오는 고1 중간·기말고사가 수능 못지 않게 중요해지는 겁니다. 내신 전문 사교육업체들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죠.
킬러문항을 매개로 현직 교사와 일타 강사, 대형 사교육 업체들이 엮여 있는 수능 카르텔. 마치 전국구 범죄 카르텔을 보는 느낌입니다. 이를 추적 중인 정부를 응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서민들이 실제 고통 받는 범죄는 지역 토착 범죄일 때가 많습니다. 전국구 사교육 카르텔을 손보고 나서 토착 사교육 카르텔도 한번 들여다보는 건 어떨까요. 고교학점제로 내신 사교육이 더욱 활개치기 전에 말입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