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행위를 찬양·고무하거나 이적표현물을 소지·유포할 수 없도록 한 국가보안법 제7조 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8번째로 합헌 판단을 내렸다. 북한의 위협 등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갈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국가보안법의 존재 가치는 여전하다고 봤다.
헌재는 26일 국가보안법 7조 1항(이적행위 찬양·동조), 5항(이적표현물 소지·유포)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반국가단체를 정의한 국가보안법 2조 1항과 이적단체 가입을 처벌하는 7조 3항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 청구는 각하했다.
청구인 A씨는 2013년 2월 자택에서 인터넷 정치평론 사이트에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을 미화·찬양하는 게시물을 다른 사람이 볼 수 있게 게시하고(7조 1항 위반), 같은 해 7~8월 도서관에서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를 출력해 집에 보관한 혐의(7조 5항 위반)로 기소됐다. 그는 재판 중인 2017년 1월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헌재는 7조 1항에 대해서는 재판관 6대 3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헌재는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갈등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북한으로 인한 대한민국 체제 존립의 위협도 지속되고 있다”며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판단해 온 국가보안법의 전통적 입장을 변경해야 할 만큼 북한과의 관계가 본질적으로 변화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청구인들은 7조 1항 처벌의 전제조건인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의 의미가 명확하지 않아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헌재는 “헌재 결정과 법원 판결의 축적으로 국가보안법의 적용 범위가 계속 제한돼 왔기 때문에 오남용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했다.
7조 5항은 이적표현물 ‘제작·유포’와 ‘소지·취득’으로 나눠 위헌 여부를 판단했다. 제작·유포는 7조 1항과 마찬가지로 6대 3 합헌 결정했지만 다수 의견에 섰던 유남석 헌재소장과 정정미 재판관이 소지·취득에서는 위헌 의견을 냈다. 재판관 4대 5로 위헌 쪽이 더 많았지만 위헌 결정에 필요한 정족수 6명에는 미치지 못해 합헌 결정이 났다. 유 소장과 정 재판관은 “이적표현물을 소지·취득한 자가 이를 대중에게 유포·전파할 수도 있다는 막연한 가능성만을 근거로 소지·취득 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과도한 규제”라고 지적했다.
김기영 문형배 이미선 재판관은 7조 1·5항 모두에 위헌 의견을 냈다. 세 재판관은 “찬양·고무·동조 등은 어떤 대상에 대한 태도를 의미할 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전복이나 폐지를 도모하거나 결의하는 행위로 볼 수 없다”고 했다. 또 “우리 사회가 성숙돼 있는 만큼 이적표현물은 사상의 자유경쟁시장에서 신속히 검증되고 배제될 수 있다”고 부연했다.
국가보안법 7조에 대해 8번째 합헌 판단이 내려졌지만 위헌 의견은 계속 확대되는 추세다. 2015년에는 7조 5항 중 ‘소지·취득’ 부분에 대해 재판관 3명이 위헌 의견을 냈고, 2018년에는 재판관 5명이 ‘소지’ 부분에 대해 위헌 의견을 냈다.
이형민 양한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