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없어져 낮엔 일하고 밤엔 선수로… 포기 않는 집념이 금 쐈다

입력 2023-09-27 04:02
곽용빈 정유진 하광철(왼쪽부터)이 26일 중국 항저우 푸양 인후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항저우아시안게임 10m 러닝타깃 혼합 단체전에서 우승한 뒤 금메달을 들어 보이고 있다. 한국은 이번 대회 남자 러닝타깃 단체전 전 종목을 석권했다. 연합뉴스

정유진(40·청주시청) 하광철(33·부산시청) 곽용빈(29·충남체육회)으로 꾸려진 한국 남자사격 대표팀은 26일 중국 항저우 푸양 인후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항저우아시안게임 10m 러닝타깃 혼합 단체전에서 또 한 번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경기를 마친 ‘맏형’ 정유진은 그동안의 훈련을 떠올리며 눈물을 보였다. 정유진은 “몇 년 전에는 야간 훈련도 할 수 없었다. 총기를 반출하는 것도 쉽지 않아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환경이 여의치 않을 때면 방바닥에 누워 표적 없는 천장을 향해 총을 겨눴다. 이미지트레이닝만 수없이 거듭했던 시간이었다.

러닝타깃이 2010년 전국체전 사격 정식 종목에서 제외되면서 그는 소속팀을 잃기도 했다. 생계를 위해 2011년부터 총기 부품을 다루는 한 회사에 취직했다. 밤에만 스포츠 선수의 삶을 살았다. 러닝타깃이 다시 정식종목이 되면서 2017년 현 소속팀인 청주시청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정유진은 아시안게임에 나서면서 “꾸준한 노력과 포기하지 않는 마음 덕분에 운동을 다시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전했다.

정유진이 닮고 싶은 선수로 언급했던 ‘사격 황제’ 진종오는 정유진의 금메달을 예견했었다. 진종오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정유진은 누구보다 성실한 선수이며,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해온 데서 엿볼 수 있듯 체력관리와 노하우가 뛰어나다”고 말했다.

이로써 한국 사격은 이번 대회에서 이틀 연속 금빛 총성을 울렸다. 비인기 종목이었던 러닝타깃에서 단체전 2관왕을 달성했다.

러닝타깃 현역선수 6명 중 3명이 나선 이번 대회에서 한국은 단체전 전 종목을 석권하게 됐다. 대표팀은 전날 남자 10m 러닝타깃 정상 단체전에서 막판 대역전극을 쓰며 한국 사격의 첫 금메달을 따냈다. 옆으로 움직이는 표적을 서서쏴 자세로 맞히는 러닝타깃은 표적 이동 속도가 일정한 ‘정상’과 무작위인 ‘혼합’으로 구분된다. 경기 후 하광철은 “전날은 깜짝 선물 같은 금메달이었다면 오늘은 실력으로 우승했다”고 전했다.

대표팀 맏형인 정유진은 팀 내 최고 득점(377점)을 기록하며 전날과 같이 개인전 동메달을 함께 거머쥐었다. 그는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에서부터 5개 대회 연속 메달을 수확하고 있다. 이번 대회까지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3개, 은메달 1개, 동메달 5개를 품에 안았다.

정신영 박구인 기자 spiri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