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중반의 청년 전도자였던 나는 미주 워싱턴 연합집회를 인도했다. 미주 교포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기회를 얻어 감사했다. 당시 ‘복음화대회’라고 하면 하나님을 믿지 않은 이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기보다 성도들의 영적 필요를 채우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보편적인 한국교회 관습인 듯했다.
실제로 복음화대회 명칭과 달리 믿음이 없는 이들의 참여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여러 교회가 연합한 단합대회와 비슷한 성격의 복음화대회를 자주 경험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문자 그대로 순수한 복음을 전하는 전도 차원의 메시지를 전하기로 했다. 교포 사회의 특수성으로 불신자나 신앙의 확신이 없는 교우들의 참석이 예견됐기 때문이다.
감사한 점은 이런 메시지가 불신자들의 결신을 이끌었고 성도들에게도 영혼 구원의 감격을 일깨운 계기가 된 듯했다. 모임을 주관한 임원 목회자들이 “오랜만에 원색적 복음이 전해진 좋은 기회였다”고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복음을 강조하는 것은 언제나 후회할 필요 없는 전도자의 소명임을 확신했다.
예상치 못한 일은 연합 집회 후 발생했다. 당시 제일한인침례교회를 담임한 김현철 목사님이 은혜를 받았다고 하시면서 시간이 가능하면 이 지역의 대표 침례교회인 제일한인침례교회에서 말씀을 좀 더 나눠달라고 하셨다. 집회 후 며칠 쉴 예정이던 계획은 급조된 또 다른 말씀 사경회로 이어진 것이다.
그 집회 마지막 날 김 목사님은 자신과 같은 사람의 리더십은 이민 온 한국인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미국 사회의 정착을 돕는 사회봉사 중심의 목회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 그런 목회를 하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말씀 중심의 목회가 교포 사회에 필요한 것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김 목사님은 “미국 남침례교회 행정을 담당하는 교단 본부에서의 사역을 생각하고 있다”며 갑자기 나에게 제일한인침례교회 담임이 되어 줄 수 있냐고 읍소하셨다. 생각지 못한 제안에 일단 거절했다. 그런데 다음 달 김 목사님과 함께 찾아온 평신도 지도자들이 “제일한인침례교회 담임을 맡아주시면 김 목사님을 교단 본부로 보내드릴 수 있다”는 이야기까지 하시는 게 아닌가.
다시 거절했지만 기도라도 할 수 없냐고 하셨다. 기도 자체를 거부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에 그렇게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러나 ‘이번 미국행에 하나님의 또 다른 인도하심이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물음표가 마음속에 일어나고 있었다. 고국 교회로 돌아온 나는 김 목사님이 예배 시간에 “이동원 목사가 미국행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했으니 (담임목사 청빙이) 가능한 일”이라며 기도 부탁을 하신 뒤 사임, 남가주 침례교단의 행정 사역을 위해 떠나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그 교회 청빙위원회가 구성돼 나를 정식으로 청빙하기 위한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청빙위원회 대표가 한국으로 나를 찾아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황당했지만 이 일의 배후에 있을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