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컴이 호나우두에게 패스합니다. 호나우두가 김민재를 젖히고 슛~ 골입니다!”
중국인 캐스터가 축구 중계에 열을 올린다. 실내경기장에는 22명의 축구선수도, 푸른 잔디도 없다. 대신 2개의 컴퓨터와 화려한 조명, 2명의 선수만 있다. 아무도 땀 흘리지 않는데, 전광판에선 축구가 펼쳐진다. 이번 아시안게임의 이색 종목 e스포츠의 ‘FC 온라인’ 경기가 펼쳐지고 있는 항저우 e스포츠 센터의 풍경이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지난 23일 개막했다. 선수촌에서 약 40분 거리에 있는 항저우 e스포츠 센터에서는 아시아 각국의 e스포츠 대표 선수들이 모여 메달을 놓고 경쟁 중이다. 총 7개 세부 종목 중에 한국은 ‘리그 오브 레전드’ ‘FC 온라인’ ‘스트리트 파이터 V’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등 4개 종목에 대표팀을 파견했다.
한국 대표팀에서 가장 먼저 무대에 선 건 FC 온라인 종목 선수들이다. 곽준혁(23·KT 롤스터)과 박기영(17·울트라세종)이 태극마크를 가슴에 품고 나섰다. FC 온라인은 최근까지 ‘FIFA 온라인4’라는 이름으로 서비스됐던 넥슨의 축구 게임이다. 이용자가 가상의 그라운드에서 유명 축구 선수 캐릭터를 조종해서 골을 넣거나 상대의 공격을 저지하는 ‘사이버 축구’다.
발이 아닌 손가락 끝에서 펼쳐지는 축구를 보기 위해 항저우 e스포츠 센터엔 현지 관람객이 운집했다. FC 온라인은 관람객이 들어설 수 없는 보조경기장에서 예선 경기를 진행하다가 패자조와 승자조 결승전이 연속으로 펼쳐진 25일에서야 처음 주경기장에서 경기를 진행했다. 개최국인 중국 선수들이 조기 탈락해 이날은 한국과 태국 선수들이 경기에 나섰음에도 열기가 뜨거웠다.
선수들은 모니터 앞에 앉아서 키보드를 이용해 실제와 흡사하게 구현된 축구 선수들을 조종했다. 가상현실 속 그라운드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었다. 3D 모델링으로 재탄생한 펠레가 2000년대 이탈리아 스타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로부터 기막힌 패스를 받았다. 펠레는 현재의 전설 김민재와 과거의 전설 파올로 말디니를 연달아 제치고 상대팀의 골망을 흔들었다.
캐스터도 중계에 열을 올렸다.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어 사이사이 “키미히” “네드베드” “누누 타바레스”같이 친숙한 단어들이 들려왔다. 캐릭터의 슛이 골대를 맞히면 실제 축구 경기장처럼 탄식 소리가, 캐릭터가 화려한 드리블로 상대 캐릭터를 제치면 감탄이 경기장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패자조와 승자조 결승은 한국과 태국의 맞대결이었는데, 모두 태국이 웃었다. 패자조에서 5연승을 달리며 “후회 없는 경기를 치르겠다”던 박기영은 탈락이 확정되자 끝내 눈물을 보였다. 27일 패자부활전을 통해 결승 진출 기회가 남은 곽준혁은 “상대와 다시 붙으면 이길 자신이 있다. 패자부활전을 거쳐서 금메달을 목에 걸겠다”고 자신했다.
항저우=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