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이 24일로 임기가 끝났지만, 새 대법원장 임명이 무산되면서 25일 30년 만의 ‘대법원장 없는 사법부’가 현실화됐다. 이균용 후보자의 임명동의안 국회 표결 일정이 여전히 불투명한 데다 투표 시 부결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어 사법부 수장 공백 사태가 장기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법원은 대법원장 대행의 권한 행사 범위 등에 대해 법적 검토에 착수했다.
대법원은 이날 대법원장 공백 사태 관련 논의를 위해 긴급 대법관회의를 열었다. 대법원장 공석 시 임명일자·연장자 순으로 선임 대법관이 권한대행을 맡는다는 규정에 따라 이날부터 안철상(사진) 대법관이 대법원장 대행을 맡게 됐다. 김덕주 전 대법원장이 1993년 부동산 투기 문제로 사퇴하고 최재호 대법관이 2주간 권한을 대행한 이후 대행 체제는 처음이다. 안 권한대행이 주재한 회의에서 대법관들은 대법원장 임명 절차가 조속히 진행돼 ‘재판 지연’ 등 국민 불편이 최소화돼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 안 권한대행은 회의 직후 “대법원장의 궐위 상황이 계속될 경우 사법부 전반에 걸쳐 적지 않은 장애가 발생하리라 우려된다”며 “대법원장 임명 절차가 조속히 진행될 수 있도록 국회 등 관련 기관의 협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는 입장을 냈다.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공백 사태 장기화에 대한 대비책 강구에 나섰다. 애초 이날로 예정됐던 이 후보자 임명동의안 표결은 본회의 자체가 무산되면서 이뤄지지 않았다. 후임 대법관 제청, 계류 중인 전원합의체(전합) 선고 5건 등 대법원장 권한 관련 현안이 쌓여 있지만, 다음 본회의는 11월 9일에야 예정돼 있다. 본회의가 다시 열려 표결이 진행돼도 민주당 내 부결 기류가 강해 자칫 대법원장 공석 사태가 연말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안 권한대행은 민유숙 대법관과 함께 내년 1월 1일 임기가 끝난다. 청문 절차를 고려하면 늦어도 오는 11월에는 후임 대법관 제청 작업이 시작돼야 한다. 대법원장 대행이 대법관을 임명제청해야 하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헌법은 ‘대법관은 대법원장 제청으로 국회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한다. 이 때문에 법원행정처는 해당 조항의 ‘대법원장’에 대행도 포함할 수 있는지 법리 검토에 들어갔다.
전합 선고를 대법원장 대행이 주재할 수 있는지도 대법관회의 안건에 올랐다. 대법원장은 통상적으로 전합 선고에서 가부 동수일 때 캐스팅보트 역할을 해왔지만, 관례상 권한일 뿐 법으로 정해진 고유권한은 아니다. 대법원도 대행이 전합 재판장으로서 선고를 주재하는 것에 법적인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대법원 관계자는 “기존 판례 변경, 사회 변화에 맞는 새 판례 제시라는 점에서 국민 관심도가 높은 전합 사건을 대행 체제에서 심리하고 판단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하느냐에 대한 의문이 남아 있다”고 했다. 안 권한대행이 전합 사건 재판장을 맡으면 업무량 증가로 본인의 소부(대법관 4인 구성) 사건 심리도 영향을 받아 재판 지연이 심화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