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희망의 교회로] 경계에 선 ‘세모세대’… 환대 받는 교회서 ‘우정 공동체’ 기대

입력 2023-09-26 03:04
독립을 거부하며 부모 품에 머무는 ‘캥거루 족’, 더 나은 나를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갓생(God生) 살기’, 자신의 신념을 표현하는 가치 소비 ‘미닝 아웃’. MZ세대를 대표하는 키워드들이다. 현재를 사는 청년 크리스천들은 스스로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을까.

국민일보는 지난달 사귐과섬김 부설 코디연구소와 공동 진행한 질적조사를 통해 2040 크리스천이 전하는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청취했다. 이들의 속마음을 들여다본 결과 젊은 신앙인들도 비슷한 나이대의 고민과 지향점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동시에 크리스천 청년으로 2023년을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경계인을 뜻하는 ‘세모 세대’라는 것도 확인했다. 폭발한 파편처럼 뿜어져 나온 ‘세모 세대 크리스천’들은 교회를 향한 한숨과 기대, 희망의 조각들을 꺼내놨다.

2040세대 질적조사 인터뷰이들의 주요 키워드를 표현한 워드 클라우드. 외로움과 공허함을 품고 살아가는 ‘세모세대’로서 환대받는 공동체에 대한 기대감이 드러난다.

“글쎄요. O도 X도 아닌 무언가?”

기독교 시민단체 9년차 활동가인 공지은(가명·38)씨는 “교회 안에서 미혼 성도는 30대 중반부터 청년도 장년도 아닌 ‘무언가’로 취급받는다”고 토로했다. 그의 반응엔 아쉬움을 넘어선 서운함이 묻어난다. 이어지는 말이 이를 뒷받침한다. “동그라미도 아니고 엑스도 아닌 ‘세모’같은 사람, 마치 처치 곤란한 존재로 여겨지는 것 같아요.”

3개월 전 결혼한 진여울(가명·33)씨는 올해를 마지막으로 청년부를 떠나야 한다. 그는 “아직 ‘청년’이란 정체성을 놓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20대를 지나 30대 계단에 올라선 성도들이 ‘청년’이란 이름표를 달기는 쉽지 않다. 새로 올라오는 20세 청년 성도와는 10살 이상 나이 차가 나지만 그렇다고 청년부 대신 마땅하게 둥지 틀 곳을 찾기는 어렵다.

20대 크리스천이라고 해서 이 같은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이인성(가명·28)씨는 “20대에 접어든 청년 성도들이 정서적 경계선을 마주한다”고 밝혔다. 특히 유년 시절부터 신앙 공동체를 경험한 이들에게 경계선은 더 두드러진다. 교회 생활을 하면서 한국교회의 일반적 관습과 문화에 익숙한 상태로 일상에서는 신앙이 없는 또래 청년들과 공감대를 형성한다. 교회의 내부자로서 외부자의 정서와 관점을 경험하는 ‘문화적 세모 세대’인 셈이다.

“무차별 범죄 속, 교회는 안전할까요?”

최근 지역과 대상을 불문하고 무차별 범죄가 되풀이되면서 ‘안전’은 일상의 기본값이 아니라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는 키워드가 됐다. 교회 갈 때 안전을 고려한다는 말은 다소 생경하다. 하지만 세모 세대 크리스천들은 “교회 또한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며 더 안전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김정은(가명·26)씨는 “우리 사회의 폭력이나 착취, 가스라이팅 문제가 교회라고 예외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사건 사고뿐 아니라 정서적 경계심에서도 안전 이슈는 발동한다. 이씨는 “정치적 발언이나 소수자 혐오 발언, 비혼 성도들을 루저 취급하는 발언을 들을 때마다 청년들은 굉장한 위축을 느끼고 이런 상황이 교회 내 갈등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역설적으로 교회가 ‘안전한 공간’을 표방할 때 희망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다양하게 나왔다. 출발점은 청년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다. 공씨는 “청년들이 교회에서 무례하게 대할 때도 있지만 20대 중후반 넘어가면 대부분 다듬어지는데 이 파도를 넘지 못해 누군가 공동체를 떠나게 된다”며 “이들을 신뢰하고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는 구조를 마련하는 게 첫 단추”라고 전했다. 김씨는 “꼭 특별한 프로그램을 준비하지 않더라도 교회가 청년들에게 정해진 공간을 내주는 것만으로 관심과 배려를 느낀다”며 “이 공간에서 자발적으로 영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동안 청년들은 물리적, 정서적으로 안전한 둥지를 만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나를 환대해주는 공동체가 그리워요.”

자신의 개성을 지키려는 욕구와 안전한 공동체를 향한 열망은 많은 청년들에게서 나타나는 역설적인 모습이다. 캠퍼스 선교단체 간사인 박민희(가명·35)씨는 대면 수업이 전면 재개되면서 기독교 동아리를 찾는 청년들이 많아지는 현상에 주목했다. 그는 “청년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 속에서 외로움과 공허함을 느끼는데 이 지점에서 변화의 전환점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고민을 공유할 수 있고 환대를 경험할 수 있는 우정 공동체인 것”이라고 말했다.

질적조사 과정에서 털어놓은 교회에서의 다양한 문제 상황과 상처에도 불구하고 인터뷰 대상자들은 교회를 떠나지 않았다. 떠난 적이 있었던 이들도 교회로 돌아왔다. 이들의 경험을 일반화하기는 어려워도 공통적으로 말하는 건 교회가 따뜻하게 환대해 준 공동체였다는 점이다.

진씨는 “고등학생 때 처음 갔던 교회라는 공간이 내겐 아주 따뜻하게 느껴졌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이런 공동체에 계속 머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고 전했다. 이씨의 경우 또래가 아닌 장년 성도들과 함께 하는 공동체에서 존중과 배려를 경험했다. 그는 “내가 자신들과 함께 있다는 것을 감사해하는 느낌을 받으면서 교회 내 세대차이에 대한 편견이 깨졌다. 자연스레 소속감이 생겼다”고 밝혔다.

“선 긋고 끼리끼리 문화? 끊고 싶어지죠.”

청년 공동체에 참여하는 교회 생활에 전반으로 만족하는 이들에게도 불편한 순간들이 있다. 소속감이 주는 긍정성과 정반대 편에 서있는 이야기다. 이씨는 ”교회 청년부 활동을 하려면 자기를 드러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오는데 대기업, 공기업 등 소위 쟁쟁한 사회적 지위를 소개하는 사람들 틈에서 ‘취업 준비 중’이라고 소개하면 나를 긍휼한 눈으로 볼까봐 싫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교회가 비슷한 ‘클래스’에 속한 사람들끼리만 친교할 수 있는 곳인가에 대한 고민도 들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프라이버시에 민감한 청년들의 특성을 고려해 신상을 캐는 듯한 분위기를 지양하고 MBTI를 공유하거나 ‘스몰 토크’부터 하는 게 자연스러울 것 같다”고 조언했다.

박씨는 “사회에서 소외와 외로움을 경험한 청년이 공동체를 찾으며 가장 원하는 것은 ‘위로’”라며 “교회로부터 무조건적인 환대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 청년들이 신앙 공동체의 울타리에 들어오게 하는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내면의 특성 파악 ‘질적조사’란…

질적조사란 연구 주제의 관계와 패턴을 발견하기 위해 진행하는 심층 면담(인터뷰)이나 포커스 그룹 조사 등이 이에 해당한다. 설문조사로 대표되는 양적조사와 달리 인간 내면의 특성을 파악해 복잡한 사회·문화 현상을 심층적으로 파악하는 데 유용하다. 주관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단점도 있으나 문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는 장점도 있다. 신국원 총신대 명예교수는 “그동안 진행한 대규모 양적 조사들이 한국교회 성도와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음을 보여주고 교회에 바라는 점을 알려줬다면 이번 질적 조사는 연구자와 연구대상자가 함께 희망을 발견하는 방향을 모색한 것”이라며 “교회 리더십을 가지고 있는 기성세대와 목회자들이 이 결과를 통해 희망의 회복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기영 손동준 유경진 박용미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