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우량물인 은행채 발행이 급증하고 한전채도 3개월 만에 발행이 재개되면서 시장에서 ‘블랙홀 현상’이 재현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들 우량 채권이 대규모 발행되며 자금 수요를 빨아들이면 신용등급이 낮은 일반 기업은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다.
24일 금융투자협회 채권 발행통계에 따르면 지난 22일 기준 9월 은행채 순발행액은 8조260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달 순발행액 3조7794억원의 배가 넘는 규모다. 올해 은행채 순발행은 지난 5월(9595억원)을 제외하면 지난 7월(-4조6711억원)까지 순상환 기조를 보였다. 그러나 지난달 은행채 발행이 전달보다 89.1% 늘어나며 다시 순발행으로 전환했다.
이는 지난해 하반기 모집한 고금리 예금상품 등의 만기가 도래하면서 은행의 자금 조달이 필요성이 증가한 탓이다. 지난해 9~11월 증가한 금융사 정기예금은 116조4000억원에 이른다. 여기에 주택담보대출 잔액이 늘어나는 등 대출 수요가 증가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
은행채 대량 발행과 더불어 금리도 치솟고 있다. 은행채(AAA·무보증) 5년물 금리는 지난 21일 4.517%를 기록해 지난 3월 2일(4.564%) 이후 약 6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은행채 1년물 금리는 지난 18일 약 8개월 만에 연 4%대에 진입했다. 일반적으로 발행량이 늘면 가격은 떨어지고 반대로 금리는 오른다.
설상가상으로 자금 시장을 휩쓴 전력이 있는 한전채도 지난 11일부터 발행 재개됐다. 올해 한국전력의 원화채권 발행 규모는 11조9000억원에 달한다.
이들 초우량채로 시장 자금이 흡수되면 일반 기업과 수신 기능이 없는 금융사들은 자금 조달 길이 막힌다. 우량채의 금리가 오른 만큼 더 높은 금리를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달 일반 회사채는 4900억원이 발행돼 전월 대비 81.9% 급감했다. 은행권에 비해 신용등급이 낮은 카드사들은 만기가 짧은 전자단기사채(전단채) 발행을 늘리며 대응에 나섰다.
은행권 자금 조달 부담을 줄이기 위한 당국 조치에 따라 은행채 발행은 추가로 증가할 공산이 크다. 금융당국은 최근 지난해부터 제한해 온 시중은행들의 은행채 발행 한도를 없애기로 했다. 은행의 유동성 관리가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 기조가 길어지면서 미국 국채 장기물 금리가 오르는 것도 은행채 금리 상승 압력을 높일 전망이다. 박경민 DB금융투자 연구원은 “대출 수요와 정기예금 만기 도래에 대비한 일반 은행채 발행과 더불어 특수은행채 발행 규모도 확대되면서 시장 전반의 수급 부담을 주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