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끗희끗한 머리칼에 이마에 주름이 잡힌 이 기성세대 목회자는 다음세대인 청년을 사랑한다. 청년 교인이 적어 담당 교역자를 따로 둘 형편이 못됐지만 교회 임원들을 설득했고, 교회 옆 건물을 대출받아 사들인 뒤 교회 이름을 뺀 방송 스튜디오를 만들어 교회 밖 청년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게 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최윤철(60) 시온성교회 목사는 최근 서울 영등포구 교회 목양실에서 국민일보와 만나 “청년부에서는 헌금이 안 나오니 투자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기성세대가 많다지만, 한국교회는 청년들이 관심과 사랑을 느낄 수 있게 그들을 조건 없이 섬겨야 한다”고 했다.
교회 밖 청년에 내어준 공간
시온성교회가 가장 자랑하는 공간을 꼽자면 본당 바로 옆 건물 지하의 스튜디오 ‘이음’이다. 교회는 식당 등 상가 건물을 매입한 뒤 창고 같은 지하실을 방송 설비를 갖춘 스튜디오로 변신시켰다. 그러나 코로나19로 2년간 문을 열지 못했다. 대신 그 기간에 방송 장비 등을 추가했다. 요즘은 청년들이 매일 찾는 곳이 됐다.
지난 14일 스튜디오에 들어서자 4개의 공간에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스튜디오 바깥에는 카페 같은 넓은 공간이 있었다. 의자를 놓아 강연 공간으로도 활용된다. 최 목사는 “한 달에 많게는 10회 정도 이 공간을 빌려주고 있다”고 했다. 교회는 강사를 초빙해 ‘글쓰기 학교’나 ‘마술 강좌’도 열었다. 최 목사는 “교회가 마을을 위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이 공간을 온전히 지역 주민들에게 돌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스튜디오 이음엔 교회의 표시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교회 이름도, 그 흔한 십자가도 찾을 수 없다. 사용 신청 홈페이지도 교회와 별도로 마련돼 있다. ‘교회가 하는 일인데 십자가 하나 정도는 달아야지’ ‘청년들이 볼 수 있게 전도지라도 하나 놔라’는 식의 볼멘소리가 교회 내부에서 나왔지만, 최 목사는 ‘조건 없이 섬기자’며 이를 말렸다고 한다.
“그렇게 하면 선한 의도여도 청년들이 교회로 들어오지 않습니다. 아무리 공짜로 해도 말이죠. 우리가 희생해야 합니다. 은근히 알려지는 건 괜찮지만 노골적으로 알리면 좋지 않습니다. 요즘 청년들은 교회 거부감이 있어 안 옵니다.”
“목사님보단 형제로 불리고파”
최 목사는 다음세대인 청년들에게 큰 애정을 품고 있다. 그는 “제가 좀 늙어 보이지만 교회 안에서는 형제자매로 지냈으면 좋겠다”며 “청년부 담임목사가 여름휴가를 갔을 때 대신 설교하며 ‘여러분께 형제였으면 좋겠다’고 말하니 한 청년이 ‘윤철 형제님’이라고 말해 기분이 좋았다”고 웃었다. 그는 목사가 되기 전 고등학교에서 4년간 과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시온성교회는 5년여 전 청년 전담 목사를 청빙했다. ‘청년 교인이 많지 않은데 부목사가 필요하겠냐’는 반대가 있었지만, 최 목사는 장로 등을 설득해 ‘딱 3년만 해보겠다’며 청년부 교역자를 세웠다. 최 목사는 “청년부 숫자가 많이 늘었고 청년들이 부목사님을 너무 좋아하고 청년부 활동도 다양해졌다”며 “장로님들도 청년부 목사가 일을 잘한다며 좋아한다”고 했다.
청년부를 전담하고 스튜디오 이음을 총괄하는 김성욱(38) 부목사는 백혈병 투병과 부친의 사업 실패 등 개인적 아픔을 사역으로 승화했다. 그렇게 청년에게 주거와 취업 지원금을 주는 희년기금과 심리상담 비용을 부담하는 마음돌봄지원비 등 청년복지제도가 마련됐다. 최 목사는 “저는 청년들에게 설교만 한 것 같다”며 “우리 부목사님만큼 청년들 개인의 삶은 몰랐던 것 같다”고 말했다.
외부인이 더 많이 오는 교회
시온성교회는 매일 교인 아닌 외부인이 드나드는 곳으로 동네에서 유명하다. 본당을 제외한 모든 공간을 외부에 무료로 개방하기 때문이다. 건물엔 최대 60명까지 들어가는 다목적홀 4곳이 있다. 구립영등포노인종합복지관, 시각장애인협회, 구립시니어합창단, 가사노동자협회 등 교회와 상관없는 단체가 이미 수개월 전부터 모임이나 행사를 정기적으로 개최한다.
최 목사는 “교회와 겹치지 않는 범위에서 모든 공간을 빌려준다”고 했다. 본당 지하 2층 탁구장은 20년 넘게 지역 탁구 동아리가 사용한다. 그는 “외부인에게 공간을 무상으로 대여하는 게 손해라는 생각도 할 수 있다”며 “그러나 우리 교회를 넘어 한국교회를 생각한다면 개교회들은 조건 없이 선한 일을 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어르신 사랑방 같은 공간도 있다. 본당과 스튜디오 건물이 이어진 통로에 있는 ‘실로암’이다. 넓진 않지만 의자와 테이블, 에어컨이 설치돼 있다. 교회는 수년 전부터 홀로 사는 노인 등 주변 이웃 120가정에 일주일에 한 번 반찬 나눔을 하는데, 1년 전부터는 ‘실로암’에서 어르신들과 만난다.
최 목사는 “일주일에 3~4일은 실로암에 어르신들이 온다”며 “예배드리러 오시는 게 아니지만 교회에 오셨다는 게 너무 고맙다”며 “예수 믿으라고 전도지 돌리면 전도가 잘되는 시대가 아니다. 삶이 전도지가 돼야 하고 교회가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한다”고 했다. 교회가 매년 성탄절마다 아파트 경비실 등 인근 지역 주민에게 성탄 선물 1000여개를 전달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2007년 시온성교회 부임 전 5년간 전남 여수에서 ‘시골 목회’를 한 최 목사는 시온성교회에서 마을 목회를 꿈꾼다.
“저는 우리 교회를 소개할 때 꼭 하는 말이 있습니다. ‘교회가 여러분들에게 마을 정자나무 같은 곳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남녀노소 아무나 와서 쉴 수 있는 곳 말입니다. 교회가 당산동이라는 마을에 정자나무가 되길 소망합니다.”
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