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여야 모두 이른바 ‘추석 밥상 민심’을 잡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가족끼리 모이는 문화가 약해지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정치인들에게 명절 연휴는 여전히 민심을 잡을 수 있는 ‘대목’으로 여겨진다. 특히 총선을 6개월가량 앞둔 여야로서는 이 대목을 결코 놓칠 수 없다. 전문가들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구속 여부에 따른 파장, 윤석열 정권의 국정 운영 평가 등이 이번 추석 민심을 형성하는 주요 소재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예년보다 연휴 기간이 긴 만큼 사람들의 이동이 증가하고 대화의 기회도 늘어나면서 이를 기반으로 지지층이 결집하고 중도층도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재명 관련 이슈가 제일 핫할 듯
다수의 전문가는 추석 밥상에 오를 소재로 ‘이재명’을 첫손에 꼽았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22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누가 뭐래도 이 대표의 단식과 체포 영장 관련 이슈가 제일 ‘핫’하지 않겠냐”며 “이런 일련의 상황들로 인해 이 대표의 정치생명이 끝날지, 아니면 회생할지 등 이 대표의 미래를 두고 설왕설래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종훈 시사평론가도 “이 대표 단식과 구속 여부 등은 지금 정치권의 가장 뜨거운 이슈”라며 “여야 간 쟁점이기도 하지만 민주당 내부에서도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의 ‘10월 사퇴설’ 등과도 맞물려서 여러 전망을 낳을 것”이라며 “이 대표가 구속까지 된다면 이슈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대표를 둘러싼 문제가 정치권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면서 여야 모두 추석 민심에 어떤 영향을 줄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크게 부각돼 부정적인 여론이 증폭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부당한 수사와 탄압에 저항하는 이 대표 모습을 통해 정권의 ‘독주’를 제어해야 한다는 민심이 모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윤 대통령의 정책과 이를 추진하는 방식도 추석 밥상에서 거론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얘기는 이제 한창때가 지나서 크게 이슈가 될 것 같지는 않다”며 “다만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대통령의 경직성, 대야 강경 대응에 대한 우려 등이 얘기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밖에 경기 악화에 따른 먹고사는 문제, 육군사관학교 내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가 촉발한 역사 논쟁, 윤 대통령이 최근 지명한 장관 후보자들의 적절성 문제,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등 주요 뉴스메이커들의 내년 총선 출마 여부, 최근 감사원이 발표한 문재인정부 시절 통계 조작 문제 등도 추석 민심을 결정하는 요인이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했다.
중도층 기류 변화 주시해야
추석 연휴 때 형성되는 민심은 지지층이 결집하는 데 영향을 준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가족 친지는 가까운 사람들이니 훨씬 더 솔직하고 직설적으로 얘기하게 된다”면서 “이번에는 연휴도 길어서 서로 팽팽하게 심도 있는 얘기를 나누다 보면 각 지지층이 규합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중도층의 기류를 더욱 눈여겨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진 원장은 “보수와 진보가 싸우는 게 겉으로 보이는 민심이긴 하지만 실제로는 이 싸움을 지켜보는 다수의 중도가 중요하다. 내년 총선은 중도층이 결정한다”면서 “진보와 보수가 싸워서 그중 승자가 민심을 형성하는 게 아니라 중도층이 쏠리는 쪽으로 추석 민심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진만 교수는 “중도에 있거나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도 긴 연휴 기간 접촉면이 넓어지면서 다양한 얘기를 듣고 이를 판단의 근거로 삼을 것이기 때문에 총선을 앞둔 여야 모두 이번 추석 민심이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네거티브 총선, 정치 혐오 우려
현안들에 대한 양 진영의 싸움이 격렬해지는 것이 총선에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지금 거론되는 이슈들이 모두 네거티브적인 것들이어서 지지층 결집에는 좋겠지만 일반 국민에게는 ‘강대강’ 대결 자체가 좋게 보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정치라는 게 민생을 위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상대를 파괴하는 식으로 가다 보니 ‘누가 더 잘하냐’가 아닌 ‘누가 더 못하냐’ 쪽으로 추석 민심이 갈 수 있다”며 “이럴 경우 소위 ‘덜 나쁜 놈을 찍자’가 돼버려 총선의 의미가 평가 절하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조진만 교수도 “예전에는 대통령이든 야당이든 한쪽에 힘이 실려 연휴 민심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됐었는데, 지금은 양 정당이 확장성보다는 집토끼를 결집하는 것만 생각하고 있다”며 “중간지대에 있는 사람들로선 이런 상황에 오히려 염증을 느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현우 교수도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가 과거를 회개한다거나 타협의 정치를 한다거나 하는 것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 데 대한 아쉬움이 중도층을 중심으로 얘기되지 않을까 싶다”며 “이런 의견에 정치권이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동환 박장군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