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이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대학을 순위 매기고 모든 학생을 한 줄로 세우는 식의 경쟁은 이제 지양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있지만 모두가 대열에서 떠나 ‘다른 길’을 가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30여 년간 교육계에 몸담은 교육 전문가이자 진실한 신앙인으로 평생을 살아 온 부산일과학고등학교 권혁제 교장(59·사진·수정교회 장로)을 찾아 신앙인으로서 자녀의 진로와 교육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가져야 되는지 물었다.
권혁제 교장은 수학교사로 20여 년간 학생과 함께하다가 부산교육청 대입담당 장학사로 교육전문직 업무를 시작해 교육부 정책자문위원, 부산진로진학지원센터 센터장, 정관고등학교장, 부산광역시교육청 중등교육과장, 부산광역시교육청 창의융합교육원 원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쳐 지난 1일 부산 과학 인재를 양성하는 부산일과학고등학교장으로 취임했다. 11일 부산일과학고등학교 교장실에서 권혁제 교장을 만났다.
권혁제 교장은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는 말씀을 품고 공직 생활을 했다. 크고 작은 어려운 순간들이 있었지만 ‘코람데오’를 늘 새기며 살았기에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저의 인생의 길을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살아왔기 때문에, 어느 곳에 발령이 나든지 믿음의 청지기로 감당해 왔다”며 “어른들께 ‘직언을 많이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고자 했기에 그랬던 것 같다”고 했다.
과학 영재들을 지도하는 교직원들과의 첫 미팅에서도 권혁제 교장은 “행복한 학교를 만들자”고 했다. 학생들이 좋은 대학에 많이 진학해야 학교의 위상이 높아지고, 그것이 학교의 평판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텐데 ‘행복한 학교’라니 의아했다.
그가 그의 삶을 지탱해 온 신앙과 30여년 간 학생들의 진로를 지도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일’ 즉 성경적으로는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따라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가능한 모토였다.
권혁제 교장은 “교직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공부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부보다는 인성과 행복을 첫 번째로 두고 그다음을 공부에 두자고 했다”며 “선생님과 학생, 학부모가 모두 행복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두 딸을 키우면서 ‘진로’에 대한 ‘행복 철학’을 분명히 세우게 됐다. 두 딸이 모두 자신과 같은 교사가 되기를 바랐지만, 자녀들은 다른 길에서 행복을 찾았다. 진로 전문가로서 자녀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직업과 환경은 누구보다 잘 알고 그 길로 데려갈 수 있었지만, 그도 자녀들이 원하는 방향을 찾아가도록 믿어주고 지원해 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는 “첫째 딸은 음악 전공을 원했는데 의견이 달라 갈등을 겪었다”며 “나중에야 자신이 좋아하는 패션 분야의 일을 하며 행복한 모습을 보고 둘째 딸은 원하는 대로 해줘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둘째 딸이 중3때 기아체험 캠프를 다녀와서 아프리카 기아 문제를 해결하는 ‘국제 농부’가 되겠다고 결심한 뒤에 케냐에서 1년간 봉사활동을 하고 돌아와 아프리카에서도 잘 자라는 콩을 연구하는 것을 보며 권 교장은 ‘다양한 경험’이야 말로 꿈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확신하게 됐다. 그는 “아빠가 시켜서 억지로 했다면 더위에 콩 심고 관찰하는 일을 어떻게 즐겁게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런데도 많은 부모들이 자녀의 흥미나 행복보다는 돈을 잘 벌고 편하게 살 수 있는 진로를 꿈꾼다. 그는 “하나님께서는 자녀에게 분명히 달란트를 주셨는데, 부모가 몰라서 개발을 못 해주거나, 재능이 보여도 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에 다른 길로 가기를 원한다”며 “좋은 학원 찾고, 좋은 학교 가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유튜브에는 부모들의 이런 불안감을 겨냥하는 ‘○세~○세 반드시 이것을 해야 후회하지 않습니다’, ‘대학 보낸 부모들이 어렸을 때 못 해줘서 후회하는 이것’, ‘우리 아이에게 맞는 학원 찾는 법’과 같은 제목의 정보가 넘쳐난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참과 거짓을 어떻게 찾을까?
권혁제 교장은 “바르게 간다는 것은 한자 ‘바를 정(正)’의 한 일(一)과 그칠 지(止)의 결합처럼 한 번 멈추어 서서 생각을 해야하는 것”이라며 “전문가들이 하는 이야기가 성경적인지 분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크리스천 부모조차 불안한 마음에 아이를 주일학교 대신 학원에 보내는 것을 많이 보았다”며 “우리 교회에도 주일에 학원을 다니며 공부해 명문대학교에 합격한 학생이 있었지만 결국 교회로 돌아오지는 않았다”고 안타까워했다.
권 교장은 진로 지도란 공부를 잘하건 못하건 관계없이 얼마든지 갈 수 있는 길이 있고, 어떤 방법으로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지 이끌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자녀가 잘 될 것이라고 믿고 교회 안에서 함께 키워간다면 세상을 이기는 자녀로 길러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교회 안에서도 자녀의 문제를 쉬쉬하고 격려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교회 먼저 키운 믿음의 선배들한테 도움을 받는 교회공동체 문화가 있어야 다음 세대를 든든히 키워갈 수 있다”며 “자녀의 문제를 교회 안에서 의논하고, 다른 집 아이도 내 자녀처럼 격려하고 사랑하는 문화가 있으면 신앙적으로나 세상적으로 성숙한 자녀로 길러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부산=이동희 객원기자 jonggy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