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현지에서 범죄에 연루돼 체포되는 것처럼 연출한 뒤 사건 무마를 대가로 한인 사업가에게 13억원을 뜯어낸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일당은 캄보디아 현직 경찰로 추정되는 현지인까지 섭외해 이른바 ‘셋업범죄’에 가담시켰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국제범죄수사계는 캄보디아에서 60대 사업가 A씨를 협박해 13억원을 갈취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공갈) 등으로 박모(63)씨 등 4명을 구속 송치했다고 20일 밝혔다. 범죄수익금을 세탁해준 김모(50)씨 등 공범 3명도 검거됐다. 경찰은 아직 붙잡히지 않은 현지 브로커 한국인 주모(51)씨에 대해선 여권을 무효화하고 인터폴 적색수배를 내렸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골프 모임에서 친분을 쌓은 A씨가 재력가인 것을 알고 범행을 계획했다. 박씨는 골프여행을 미끼로 A씨를 캄보디아로 유인한 뒤 현지 술집에서 A씨가 미성년자 성매매 범죄에 연루된 것처럼 상황을 꾸몄다. 무고한 사람에게 계획적으로 접근해 범죄를 뒤집어씌우는 전형적인 셋업범죄 수법이라고 경찰은 설명했다.
박씨는 브로커 주씨를 통해 상황극에 필요한 현지인을 섭외했다. A씨를 체포해 경찰서로 연행한 이들도 주씨가 섭외한 현지인이었다. 당시 현지인 6명이 “성매매 범죄에 연루됐다”며 A씨를 지역경찰서로 데려갔는데, 이들 중 1명은 실제 캄보디아 경찰 제복까지 입고 있었다고 한다. 경찰은 이들 중 일부가 캄보디아 현직 경찰인 것으로 추정한다.
박씨는 이후 A씨에게 “100만 달러만 있으면 수사를 무마할 수 있다고 한다”며 금품을 요구했다. A씨를 속이기 위해 공범 1명이 함께 체포됐다가 돈을 내고 풀려나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도 했다. 결국 A씨는 박씨가 제시한 계좌로 13억원을 이체했다.
경찰 조사 결과 박씨 등은 귀국 후 은행 34곳에서 범죄수익금을 모두 현금화해 분배했다. A씨가 의심을 품자 합의금을 공동 분담하자며 범죄수익금 중 일부인 5억원을 A씨에게 돌려주고 신고를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A씨가 지난 7월 경찰에 신고하면서 덜미가 잡혔다. 박씨는 과거에도 유사한 셋업범죄를 저지른 전력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성윤수 기자 tigri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