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클로드 트리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20일 물가 안정을 위한 금리 상승이 장기간 이어질 수 있다면서 금융위기 가능성을 경고했다. 2025년까지 미국 유럽 등 주요국의 물가 상승률을 2%대로 누르는 데 필요한 추가 금리 인상으로 금융 불안정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트리셰 전 총재는 이날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진행된 ‘2023 G20 글로벌 금융안정 컨퍼런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물가 안정을 위한 싸움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믿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고금리가 장기간 지속할 것”이라며 “한국을 포함해 세계 경제는 물가 상승을 억제해야 한다는 과제에 직면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부채 문제도 지적했다. 트리셰 전 총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 중 하나는 부채 과잉”이라며 “고금리가 장기적으로 지속하는 것은 세계 경제에도, 한국 경제에도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언제건 가장 취약한 부문이나 국가에서 새로운 금융 위기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탈세계화로 인한 한국 경제의 수출 둔화 위험도 언급했다.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공급망 재편으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탈세계화 흐름이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트리셰 전 총재는 “한국은 무역이 증가하는 세계 경제 흐름에 성공적으로 참여했다. 전 세계가 그 반대 방향으로 간다고 하면 한국에는 당연히 문제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가계 부채 급증 원인으로 지목되는 부동산 부문에 대해서도 경고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촉발된 만큼 부동산으로부터 새로운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트리셰 전 총재는 “과거 미국의 사례에서 봤듯 부동산 부문에서 새로운 금융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트리셰 전 총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ECB 총재를 지내며 위기 극복에 성공했다. 현재는 프랑스 중앙은행 명예총재를 맡고 있다.
권민지 기자 10000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