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가 잔뜩 낀 충북 옥천의 한 마을.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주민들은 싸늘한 시선을 보낸다. 집집마다 정체 모를 부적이 붙어있다. 의뢰인을 따라 이 마을로 들어선 퇴마사 천박사(강동원)는 방울이 달린 팔찌를 들어 보인다. 귀신 앞에서 울린다는 이 팔찌는 10년간 한 번도 울린 적이 없었다. 마을의 한 소녀 앞에서 팔찌의 방울이 쩌렁쩌렁한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직전인 27일 개봉하는 영화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은 한국적인 오컬트물이다. 빙의, 귀신, 부적 등 오컬트 스릴러 요소에 코믹함과 액션신을 더했다. 주인공인 천박사는 마을을 지키는 성황당을 모시는 무당집의 당주다. 영험한 무당인 할아버지의 능력을 이어받았다. 그의 할아버지는 귀신을 가두는 부적 ‘설경’을 잘 그리기로 유명했다. 할아버지가 설경으로 가둔 귀신 범천(허준호)의 마수가 옥천 마을에 뻗쳤다.
천박사의 괴짜스러움과 코믹한 모습은 극 초반 흥미를 높인다. 고객 앞에서 뻔뻔하게 가짜 퇴마 의식을 하며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으스댄다. 그러면서 자신이 하는 퇴마는 곧 심리치료라고 우긴다. 퇴마 능력은 없지만 타고난 눈썰미가 좋다. 의뢰인의 집에서 특이점을 잘 포착하고, 심리를 빠르게 읽는다. 꽃미남 배우 강동원이 표현하는 천박사는 반전 매력으로 다가온다. 조수인 인배(이동휘)와 티키타카도 재미를 더한다.
천박사가 퇴마사 행세를 하는 건 돈 때문이 아니다. 할아버지와 동생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좇고 있었다. 귀신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유경(이솜)을 만나면서 가족의 원수인 범천을 맞닥뜨리게 된다. ‘반귀신’인 범천을 연기한 허준호는 극 전반의 긴장감과 공포스러움을 조성했다. 오싹한 눈빛, 잔인함을 무서울 정도로 기괴하게 표현해냈다. 마을 사람들에게 빙의하면서 유경과 천박사를 공격하는 범천을 이들은 과연 이길 수 있을까.
추석 연휴를 노린 이 영화는 어두운 주제를 너무 무겁지 않게 풀어간다. 전반부는 코믹함을 챙기고, 후반부에는 설경을 둘러싼 비밀을 풀어가는 과정을 통해 스릴러적인 재미를 선사한다. 검, 낫, 괴력, 예초기 등 다양한 무기와 능력치를 이용한 액션으로 몰입감도 높였다. 개봉 11일을 앞둔 20일 실시간 예매율 1위(23.9%)를 차지했다.
다만 인물들이 다소 평면적으로 그려진다. 인물의 서사와 입체성보다 미스터리를 파헤치고 악귀를 물리치는 내용 전개에 무게를 뒀다. 강동원이 주연을 맡고, 요괴와 도술을 소재로 한 영화 ‘전우치’와 비슷하다는 반응도 나왔다. 이에 대해 강동원은 지난 19일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천박사 캐릭터가 자칫 잘못하면 ‘전우치’나 ‘검사외전’의 중간지점에 있는 캐릭터가 돼서 겹쳐 보일 것 같았다”며 “최대한 그렇게 보이지 않게 피하려고 했다”고 밝혔다. 이어 “천박사라는 인물은 내면의 아픔이 있는 캐릭터기 때문에 감정표현에 신경 썼다”고 덧붙였다. 상영시간 98분.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