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총선 관전 포인트, 청년 정치

입력 2023-09-21 04:06

정기국회는 이념과 진영 대결
격전장… 독기 서린 여야 대치
사회 전체를 경직시키고 있어

다음 총선에서 변화 일으킬 수
있는 변수는 청년 정치인들
'좋은 일자리' 등 정치 어젠다
미래형으로 바꿔 쟁점화해야

대한민국의 30년 미래를 놓고
경쟁하면 청년들 호응도 얻고
중도층 지지도 기대할 수 있어

여의도 정치는 갈수록 민심과 멀어지고 중도층의 많은 국민은 마음 둘 곳을 잃었다. 정부 여당은 지금이 체제 전환기나 되는 듯 국가 정체성과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쏟아내며 반국가세력과의 투쟁을 외치고, 제1 야당 대표는 알 수 없는 단식을 이어가는 중이다. 거대 양당은 다음 총선을 공산전체주의 추종 세력과 친일 검찰 독재세력 간 진검 승부로 만들어 끝장을 보겠다고 작정한 듯하다. 야당 대표는 단식으로 내부를 결집하고, 대통령은 내각에 맞서 싸울 것을 주문하며 전투 대오를 정비하고 있다. 정기국회는 이념과 진영 대결의 격전장이 돼가고 독기 서린 여야 대치가 사회 전체를 경직시키고 있다. 학계와 문화예술계, 언론 분야까지 싸움이 전방위로 확산하며 평범한 시민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주고받던 정치 방담조차 어렵게 됐다.

그나마 이준석과 박지현, 조성주를 비롯한 청년 정치인들이 지금의 그로테스크한 총선 구도에 균열을 내주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기대라도 있어 다행이다. 최근 이들은 당의 주류 세력으로부터 따돌림당하고 댓글 테러를 당하면서도 팬덤 정치에 굴복하지 않고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목소리를 키워가고 있다. 정부 여당이 때아닌 홍범도 논란과 공산전체주의와의 투쟁에 빠져들 때 이준석은 이를 비판하며 균형을 찾으려 노력하고, 박지현은 농성 중인 당대표를 찾아가 단식 중단을 눈물로 호소해 논란에 휩싸였지만 줄곧 당내 팬덤 정치를 비판해 왔다. 조성주는 진보 정치가 폐쇄적인 노동조합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일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정치로 전환할 때라며 새 비전을 구체화했다.

이들의 작은 행보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다음 총선에서 약간의 변화라도 일으킬 변수는 이들뿐이기 때문이다. 거대 양당은 기득권 카르텔에 안주하며 거꾸로 세상을 자기 수준에 맞추려 한다. 이대로라면 그들은 어느 순간 민심의 쓰나미에 쓸려 가버릴 것이다. 변화는 도둑같이 온다. 진영을 대표하는 유튜브들이 공론장을 독점한 것 같아도 중도적인 슈카월드의 구독자가 300만명에 육박한다. 슈카(본명 전석재)는 최근 20대를 통으로 날려버렸던 자신의 경험을 말하며 청년 고용문제의 심각성을 누구보다 설득력 있게 설명했다.

거대 양당이 이념 대결의 레트로 정치에 빠져드는 이유는 미래 비전이 없기 때문이다. 압도적 대선 승리에도 이명박정부는 실용적 보수로의 전환에 실패했고, 막대한 정치적 자산을 갖고 출범한 문재인정부는 운동권 이후의 진보 정치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들은 어리석게도 스스로 더 나아지려 하기보다 상대방 죽이기에 몰두했다. 윤석열정부도 3대 개혁을 고리로 한국 사회의 구조적 전환에 도전하는 듯했으나 결국 이념 전쟁이라는 쉬운 길을 선택했다.

조귀동 작가가 우려하는 대로 한국이 미국이나 독일, 스웨덴이 아니라 ‘이탈리아로 가는 길’에 들어섰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20·30대 청년들이 감당해야 한다. 이준석을 비롯한 청년 정치인들의 문제의식도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 당 지도부 몇몇을 바꿔봐야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싸우려면 청년의 미래, 대한민국의 30년 미래를 놓고 경쟁해야 한다. 보통의 청년들이 취업과 연애와 육아 같은 평범한 일상이 위협받는 현실에 분노하고 급진적인 개혁을 요구해야 한다. 그래야 청년들의 호응도 얻고 중도층의 지지도 기대할 수 있다. 여의도 정치를 재구성하려면 사람이 아니라 정치 어젠다를 미래형으로 바꿔야 한다.

청년들이 당면한 현실은 정신건강을 비롯해 집과 빚, 워라밸과 젠더 문제 등 복잡하지만 그 시작과 끝은 좋은 일자리에 있다. 평범한 일상이 보장되는 좋은 일자리가 감소하고 노동시장의 격차가 갈수록 확대되는 현실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총선의 핵심 쟁점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사회 시스템 전반을 재정비하는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하지만 그 첫걸음은 총선을 통해 이를 정치 의제화하고 정부가 당장 해법을 마련하도록 정치적 압박을 극대화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총선 승리에 목이 타는 거대 양당의 지도부는 결국 이준석과 박지현에게 다시 손을 내밀 것이다. 그들도 이제는 ‘이대남’과 ‘이대녀’의 진영 대변자가 아니라 민생과 미래, 청년의 삶을 책임지는 대표 정치인의 자격과 지위를 조건으로 손을 잡아야 한다. 총선의 관전 포인트도 여기에 있다.

최영기(한림대 객원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