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이뤄질까… 천정부지 미국약값 내달부터 인하협상

입력 2023-09-20 04:05
사진=AFP연합뉴스

미국 인플레이션방지법(IRA)의 일환으로 저소득층과 노년층을 위한 정부와 제약사 간 의약품 가격인하 협상이 다음 달로 다가온 가운데 미국의 가장 큰 정치 의제 중 하나인 약값 현실화가 이뤄질지 주목된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18일(현지시간) 다음 달부터 노인 의료보험제도인 ‘메디케어’가 10개 의약품에 대해 처음으로 제약사들과 직접 가격인하 협상에 돌입할 권한을 갖게 된다고 보도했다. 보건복지부 산하 건강보험서비스센터(CMS)가 지난달 발표한 가격협상 대상인 10개 의약품에는 글로벌 제약사 머크, 존슨앤드존슨,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BMS) 등이 제조한 암·뇌졸중·당뇨병 치료제가 포함됐다. 제약사들은 다음 달 1일까지 가격 협상에 동의할지 여부를 알려야 한다.

미 정부 당국은 이번 협상을 거쳐 2026년 의약품 가격인하를 단행하고, 향후 4년 동안 50개 의약품에 대해 추가로 가격인하에 나설 예정이다. 만약 제조사가 협상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메디케어 및 메디케이드(저소득층용 의료보험제도) 시장에서 의약품 공급을 금지당하거나 막대한 세금을 내야 한다.

신문은 “약가 개혁은 지난 10년간 미국 정치의 가장 큰 의제 중 하나였다”며 “2015년 당시 대선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튜링제약이 에이즈(후천성 면역결핍) 치료제 다라프림 가격을 5000% 이상 인상해 폭리를 취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미국 내에선 글로벌 제약사들이 노인 만성질환인 당뇨병,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등에도 과도한 가격을 부과한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해 IRA를 통과시키면서 청정에너지 관련 법뿐 아니라 약가 개혁 법안도 포함시켰다. 법안에 따라 2025년 1월부터 노인들의 약품 구입에 대한 전체 본인 부담금이 연간 2000달러로 제한된다.

FT는 “약가 인하가 이뤄진다면 이는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올 것”이라고 분석했다. 비싼 약값이 없어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거나 파산에 직면한 노령층의 고통이 크게 완화될 것이란 얘기다.

지난해 미국인의 의약품 지출액은 6000억 달러 이상으로 전 세계 관련 지출의 절반에 해당했다. 싱크탱크인 랜드연구소의 2021년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인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2개국보다 처방약 비용을 평균 2.5배 더 많이 지불하고 있으며, 미국 의약품 가격은 OECD 평균보다 3.5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지난 6월 “2021년 기준 900만명의 미국인이 높은 약값으로 인해 병원 처방약을 제대로 복용하지 않는 것으로 집계됐다”는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현실이 이런데도 제약업계는 “약가 개혁이 첨단 신약개발과 혁신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미 정부와 맞서는 모양새다. 머크, BMS, 존슨앤드존슨, 노바티스 등 거대 제약사들은 IRA 약가 협상이 위헌이라며 미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스테이시 두세치나 밴더빌트대 교수는 “이번 약가 개혁은 역사적인 변화이자 큰 진전”이라며 “가격 협상을 통해 얻어낼 절감액은 메디케어 가입자들의 본인 부담금뿐 아니라 IRA의 다른 분야를 지원하는 데 사용될 것”이라고 했다.

김지애 기자 am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