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세상’의 소금과 빛

입력 2023-09-20 03:09

지난 십여 년간 한국 교세가 하락했는데 여기에는 기독교의 부정적 이미지가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미지의 실추 원인으로 교회의 ‘공공성’과 복음의 ‘공적 능력’ 상실이 꼽힙니다.

한국에 복음을 들고 온 외국 선교사들은 복음만 전하지 않았습니다. 병원을 세워 아픈 이들을 치료했고 곳곳에 학교를 세우며 계몽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당시 계급 사회였던 조선에 인권 개념을 소개했으며 특히 여성도 남성처럼 똑같은 인격체임을 알렸습니다. 이것을 복음 및 선교 사역과 별개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종교개혁자 장 칼뱅은 로마 가톨릭의 부패 개혁만을 주창하지 않았습니다. 프랑스에서 박해를 피해 스위스 제네바로 피신한 후 제네바를 사회적으로 개혁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현재 대부분의 국제기구 본부가 있는 제네바는 당시만 해도 유럽에서 가장 냄새나고 열악한 작은 도시에 불과했습니다.

이처럼 크리스천은 본질적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일부 크리스천의 이기적인 행동이 비난을 받으면서 삶과 일치하는 복음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신앙 척도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로 판가름 납니다. “일주일에 몇 번 예배를 드리는가.” “십일조는 얼마나 잘하나.” “하루에 기도와 성경 읽기는 어느 정도로 하나.” 그러나 공적 영역에서의 삶은 어떠한지 묻지 않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어떤 크리스천들은 사적 신앙생활에 집중한 나머지 공적 영역에서의 소중한 역할을 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복음이 삶과 일치하지 않으며 종교적 의례만 내세운 사람들이 하나님께 책망받았습니다. 마태복음 23장에서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을 ‘회칠한 무덤’이라고 비유하며 질책했습니다.

종종 비기독교인들은 같이 교회에 가자는 이들의 말에 “예수와 성경은 좋은데 기독교인이 싫어서 안 간다”고 대답하곤 합니다. 많은 기독교인이 예배드릴 때만 크리스천처럼 살고, 교회에 가지 않는 주중에는 전혀 그렇게 살지 못하다 보니 이런 일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소금과 빛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빛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치는지 구체적으로 기록합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16절) 우리의 선한 행동, 즉 공공선을 실천하는 우리 삶을 통해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자주 간과하는 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디의 소금과 빛입니까. 교회 안의 소금과 빛입니까. 아니면 세상의 소금과 빛입니까. 본문은 13절에서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를 간과한 채 교회 안에서만 소금과 빛이 되려고 합니다. 예배드리는 교회에서는 착한 행실을 보여주는데 주중에 거하는 세상에서는 그런 모습을 안 보여주니까요.

여러분은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소금의 맛을 되찾을 때 기독교가 희망 있는 공동체로 인식될 것입니다. 사적 영역에 머물던 우리 신앙을 공적인 장소로 옮겨야 합니다. 우리는 삶의 자리에서 복음을 살아내야 합니다. 여러분이 속한 공동체가 하나님 나라가 되도록 애써야 합니다. 거기에 교회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김민석 목사 (한국공공신학연구소장)

◇한국공공신학연구소는 한국교회의 신뢰 회복과 균형 잡힌 부흥을 위해 세계의 공공신학을 한국교회에 소개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한국적 공공신학을 연구해 세계교회에 소개하는 것을 목표로 2021년 설립됐습니다. 이를 위해 국내외 교회, 신학교, 목회자를 대상으로 강의를 진행하며 논문 및 도서 출판 사역에 힘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