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대형 자산운용사들의 계열사 판매 의존도가 심화되고 있다. 침체된 업황 속에서도 수익을 올릴 수 있었던 배경에 증권, 은행 등 대형 유통망을 판매창구로 활용한 ‘계열사 찬스’가 작용한 셈이다. 이런 행태가 공정거래법상 ‘일감 몰아주기’ 위반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7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7월 31일 기준 국내 주요 자산운용사의 계열사 펀드 판매 비중은 지난해 말 대비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삼성자산운용은 삼성증권, 삼성생명 등 계열사를 통해 판매한 펀드설정액이 8조591억2500만원으로 전체 판매비중의 30.18%를 차지했다. 이 비중은 지난해 말보다 4.14% 포인트 늘어났다.
미래에셋자산운용 역시 미래에셋증권, 미래에셋생명 등을 통해 판매한 펀드 설정액이 7조1603억9700만원으로 지난해 말 대비 1.41% 포인트 늘었다. 전체 판매비중도 39.13%에 달했다. 신한자산운용도 신한투자증권, 신한은행 등을 통해 판매된 펀드액이 10조4360억4300만원이었다. 판매 비중은 1.03% 포인트 증가한 43.60%로 나타났다.
이런 대형 자산운용사의 계열사 의존도 심화는 타깃데이트펀드(TDF) 시장 성장세와 무관치 않다. TDF는 투자자의 은퇴시점을 목표시점으로 두고 생애주기에 따라 종목 구성을 유연하게 바꿔주는 자산 배분 펀드다. 이들 운용사들은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증권사, 은행 등 대형 유통망을 거느린 계열 판매사의 힘을 빌려 영업을 강화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들 자산운용사의 펀드 설정액 중 판매망 활용이 아닌 자금을 직접 위탁, 투자한 금액이 어느 정도인지도 알 수 없다.
이같은 대형 자산운용사와 해당 계열사 간 불투명한 밀어주기 영업 행태가 시장의 공정성을 해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행 금융투자업규정상 판매사의 계열사 상품 판매한도를 25% 이내로 제한하는 것 이외 자본시장법 상에서는 일임 형식으로 계열사 밀어주기 행태에 대한 규제는 없다. 이와 관련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계열사 간 자금 위탁운용 등은 금융관련 현행법 상 위법사항은 아니지만 공정거래법 상 문제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룹 후광 효과를 누리기 어려운 중소형 자산운용사들은 ‘든든한’ 계열사를 등에 업은 대형 운용사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다. 한 소형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대형사들이 특정 상품에 대한 계열사 판매 비율은 공개하지 않으면서 시장 점유율이 높다고 홍보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김혜지 기자 heyj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