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어린이집을 짓느니 벌금을 내는 게 더 싸다.” 최근 패션 플랫폼 무신사의 한 임원이 이런 발언을 해 논란이 됐다. 임직원 1500명이 일하는 무신사는 신사옥을 지으면서 직장어린이집을 열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수요 부족을 이유로 번복했고, 벌금을 내는 게 더 나은 일이라는 취지의 발언까지 나왔다.
상시 근로자가 500명 이상이거나 상시 여성 근로자가 300명 이상인 사업장은 의무적으로 직장어린이집을 설치해야 한다. 어린이집을 짓지 않으면 연간 최대 2억원의 이행강제금을 내야 한다. 벌금이 적지 않은 편이다. 그럼에도 직장어린이집을 설치하고 운영하는 것보다 비용 측면에서 훨씬 유리하다는 발언이었으리라.
일견 맞는 말이다. 어린이집을 짓느니 벌금을 내는 게 더 싸게 먹힌다는 건, 엄연히 팩트다. 설치뿐 아니라 운영까지 이어가려면 꾸준히 비용이 든다. 인건비, 유지보수비, 운영 중 생기는 갈등 상황에 따른 비용 등이 계속해서 발생한다. 1년에 2억원을 내고 마는 게 훨씬 깔끔하고 간단한 일이다.
출산율만 봐도 직장어린이집을 운영하는 건 일종의 ‘공간 낭비’일 수 있다.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기준 0.778명이었다. 대한민국 가임기 여성이 평생 낳는 자녀의 수가 1명이 안 된다. 2004년부터 딱 두 해(2007년, 2012년)를 제외하고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가운데 16년째 꼴찌다. 당분간 출산율이 반등할 가능성 또한 보이지 않는다.
이 임원은 직장어린이집에 대해 “소수의 운 좋은 사람들이 누리는 복지”라는 말도 했다. 맞는 말이다. 직장어린이집을 갖춘 기업 자체가 소수다. 직장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보편적인 상황이 아니다. 이 발언의 기저에는 “직장어린이집이라는 복지를 소수만 누리는 게 합당하느냐”는 의문도 깃들어 있다. 이 또한 일견 타당하다. ‘공정(公正)’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시대에 소수의 유자녀 직원들만 누릴 수 있는 직장어린이집 설치는 보기에 따라 충분히 불공정해 보일 수 있다. 아이를 키우는 소수의 직원을 위해 기업이 비용을 들이면, 아이를 키우지 않는 다수의 직원이 상대적으로 혜택을 덜 보게 된다. 그걸 ‘피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효율적인 기업 운영을 위해서 벌금으로 갈음하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기업에서뿐이랴.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은 폐기되고 있다. 학교에서 학부모는 진상이 되기 일쑤고, 식당에서 어린아이는 입장조차 거부되기도 한다. 악성 민원에 시달리는 교사를 위로하고 지지하는 기사에는 “홈스쿨링이나 하라”는 댓글이 무차별적으로 달린다. 모든 학부모가 잠재적 진상 취급을 받고 있다. 이런 일련의 상황을 지켜보다 보면, ‘이 나라에는 아이가 더 이상 태어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일’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직장어린이집은 다수의 무자녀 직원들에게 민폐이고, 조용한 식당에서 어린아이들은 등장 자체가 민폐이고,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이지만 어떤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는 것 자체가 민폐이고, 지하철에서는 아직 배 속에 있으면서도 요금을 지불하고 탑승한 승객을 불편하게 하므로 민폐다.
포용도 여유도 없는 사회에서 출산과 육아는 비합리적인 선택이다. 출산율이 반등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 이유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행복하지만 섣불리 권하지는 못하겠다. 비장하게 한마디 한다면 이런 정도다. “나는 행복하지만 그 행복의 여정에서 각개전투를 벌여야 했다. 배려도 도움도 일절 기대하지 않아야 속 편하다. 그래도 기꺼이 동참하겠는가.”
문수정 산업2부 차장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