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업계 ‘적과의 협업’ 바람… 기술공유로 테슬라 견제?

입력 2023-09-18 04:05

경쟁 관계에 있는 완성차 업체들끼리 서로 손을 잡고 있다. 100% 전기차 전환 시점이 가까워지면서 최대한 빠르게 전기차의 상품성을 끌어올리려고 배터리·플랫폼 등을 경쟁사와 공유하는 것이다. 자동차 업계에서 벌어지는 ‘적과의 협업’은 전기차 시장의 ‘메기’인 테슬라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KG모빌리티는 오는 20일 출시하는 첫 전기차 ‘토레스 EVX’에 중국 전기차 업체 BYD와 협력해 제작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탑재한다고 17일 밝혔다. LFP 배터리는 기존 대부분 전기차에 장착되던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보다 가격이 싸다. 가성비 전략을 펼치는 KG모빌리티는 자동차 원가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배터리를 저렴하게 수급해 차량 가격을 낮출 수 있다. 2025년 출시 예정인 전기 픽업트럭과 대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도 BYD의 배터리를 장착할 계획이다.

BYD 입장에선 배터리 기술력을 팔아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자사 승용차의 한국시장 진출을 앞둔 상황에서 배터리 경쟁력을 시험해 볼 수도 있다.

미국 포드는 독일 폭스바겐에 손을 내밀었다. 포드는 폭스바겐의 전기차 플랫폼 MEB를 기반으로 주력 SUV인 익스플로러의 전기차 모델을 개발 중이다. 이 차량은 유럽 시장 공략을 목표로 한다. 지난 3월 공개된 익스플로러 전기차 모델도 기존 준대형급이었던 몸집을 유럽인이 선호하는 준중형급으로 줄였다. 유럽 시장에서 이미 성공을 거둔 폭스바겐의 MEB 플랫폼으로 유럽 진출 장벽을 낮춘 것이다. 차량 디자인도 폭스바겐의 ID.4를 닮았다. 폭스바겐 입장에선 자체 개발한 플랫폼으로 더 많은 차량을 생산해 효율을 높일 수 있다. 두 회사는 자율주행 회사 ‘아르고 AI’에도 공동 투자했었다.

포드는 2017년에 10억 달러, 폭스바겐은 2020년에 26억 달러를 투자했다. 다만 완전 자율주행에 대한 회의론과 수익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이 회사는 지난해 10월 문을 닫았다.

프랑스 르노는 내년 하반기 출시 예정인 신형 하이브리드차량 개발을 위해 볼보와 협업하고 있다. 볼보의 CMA 플랫폼을 신차에 탑재한다. 향후 출시될 르노의 전기차도 같은 플랫폼을 기반으로 개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볼보를 인수한 중국 지리자동차의 하이브리드 기술은 르노보다 앞서 있다”며 “친환경차를 신속하게 개발해야 하는 르노 입장에선 지리차의 기술을 이어받는 게 독자 개발보다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경쟁사끼리 서로의 전기차 기술력을 공유하는 건 테슬라를 견제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테슬라라는 막강한 사업자의 존재가 다른 업체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측면이 있다”면서 “전기차 경쟁은 생존이 걸린 싸움이기에 다른 경쟁자에게 손을 내밀어서라도 기술력을 끌어올리려고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