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제조업과 미래 신사업 준비현장이 하나의 산업단지 내에 공존하고 있었다. 울산의 거대한 정유·화학 공장 지대를 지나 폐플라스틱 재활용 시설이 자리한 곳으로 향했다. 흙더미의 꼭대기를 평평하게 다지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굴착기가 여기저기 모래를 퍼내고, 그걸 25.5t 덤프트럭들이 날랐다. 축구장 22개 넓이의 빈 땅에선 커다란 건설기계들이 장난감처럼 보였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이 현장을 두고 “인류가 갈 수밖에 없는 길을 향한 첫걸음”이라고 했다.
울산시 남구 SK이노베이션 정유·화학 복합단지(울산CLX) 안에 들어서는 세계 최초의 복합 플라스틱 재활용 단지 ‘울산ARC’의 사전공사 현장을 지난 13일 찾았다. SK지오센트릭(SK이노베이션의 석유 화학물질 자회사)은 버려지던 쓰레기(플라스틱)를 미래 자원으로 재활용하는 대규모 시설을 세워 바뀌는 시대 흐름에 선제 대응하는 중이다. 순환 경제를 구축해 탄소 감축, 쓰레기 해결, 생태계 오염 축소 등에 이바지한다는 구상이다. 한국을 포함해 각국은 폐플라스틱의 재활용 의무화 규제를 도입하고 있다.
SK지오센트릭은 다음 달부터 울산ARC 건설에 본격 돌입한다. 21만5000㎡ 부지에 1조8000억원을 투입한다. 현재 정지(整地) 작업 중이다. 2025년 가동에 들어가면 매년 폐플라스틱 32만t을 재활용할 수 있다. 500㎖ 생수병 213억개에 달하는 규모다. 울산ARC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화학적 재활용 기술을 대표하는 세 공정을 모두 갖춘 재활용 클러스터다. 재활용 기술별로 열분해에 15만t, 페트(PET) 해중합에 9만8000t, 고순도 폴리프로필렌(PP) 추출에 7만6000t의 원료를 투입한다.
화학적 재활용은 물리적 재활용의 단점을 극복하는 기술이다. 물리적 재활용은 깨끗한 투명 페트병 같은 제한된 쓰레기만 잘게 쪼개 재활용할 수 있다. 반면 화학적 재활용은 플라스틱 오염도, 특성, 색상 등을 가리지 않고 적용할 수 있다. 물리적 재활용과 달리 플라스틱 세척 및 같은 색상끼리의 분류 작업도 필요 없다.
특히 산업계는 열분해 기술에 주목한다. 열분해유는 비닐, 라면 봉지 등을 300~800℃의 고온에서 녹인 기름이다. 여기엔 여러 부산물이 들어있어 저품질 경유, 보일러 연료 등으로만 활용해왔다. SK지오센트릭 김기현 PM은 “SK이노베이션이 차별성 있는 열분해유 후처리 기술을 성공적으로 개발 중이다. 덕분에 열분해 후처리유가 원유에서 추출한 나프타 역할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울산ARC에선 열분해 후처리유 중 일부를 울산CLX 나프타분해설비(나프타를 분해해 에틸렌, 프로필렌, 벤젠 등을 생산)에 투입할 계획이다.
최 회장은 지난 14일 울산시 울주군 울산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3 울산포럼’에서 “생태계 파괴를 덜 하기 위해서 사용한 모든 플라스틱을 100% 재활용하는 게 SK의 목표다. 인류는 그럴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울산ARC 건설은) 그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울산=황민혁 기자 okjs@kmib.co.kr